기독교

한 영혼을 구원하심

김일중 2008. 9. 15. 13:37

 한 영혼을 구원하심

 2008년 9월 15일

 김일중 집사

 

선교지의 둘째 날 밤, 한밤 중에  나는 잠에서 깨었다. 세상은 조용했다. 방은 어두었다.  새벽 두 시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소리내지 않고, 하나님, 저희들이 온 이곳, 하늘은 넓고, 땅도 넓고, 고기는 한 없이 많아요, 그러나, 사람을 낚는 어부는 없는 것 같아요. 주님을 아는 이도 없는 것 같아요, 라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나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루루 흘려 내렸다.

 

내가 인천 공항을 떠나  4시간 5분 만에 우리 선교팀 일행과 함께 도착한 위안성 쿤밍 국제공항에서 밤 11시 반에 만난 현지 운전기사는 영어 단어 하나를 몰랐다.  그와 의사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손짓 발짓과 소리였다. 우리 일행은 그 공항에서 100 킬로를 달려서 새벽 두 시경에 우리의 목적지 위시에, 인구 15만의 소도시에 도착 했다. 우리는 거기서 두 곳의 호텔을 찾아갔다. 두 호텔에서 말이 안 통하였다.  호텔비가 아주 비쌌다.

 

나는 호텔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소조우에서  자고 있는, 내가 개인 적으로 알고 있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40대의 한 중국인을 전화로 불러 전화 통역을 부탁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한 호텔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새벽 6시 때였다. 이때 나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신 한 영혼을 만났다. 그 여인은 우리가 그 호텔에 도착한 그 날 밤 프런데스크로 근무 중인 여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카오 양. 예술고등학교를 마친 20세 초반의 미혼여성. 키 1m 50cm 정도, 체구는 가냘픈데, 얼굴은 맑고 깨끗했다. 이목구비가 또렸한 매우 총명하게 보이는 여인이었다. 

 

나는 일행과 함께 5일간의 바쁜 선교 활동을 한 뒤, 주일 날 아침 경건회를 마치고 9시경에,  프론데스크로 근무 중인 카오 양을 만났다. 나는 그 녀에게 중국어로 된 전도지를 보여주면서 교회에서 훈련 받은 열 다섯 문장의 선교전도언어로 말했다. 그녀는 내가 전혀 예상못했는데,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였다.  내가 천천히 또박또박 영어로 말하면 그녀는 나의 말을 이해 했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부분은 영어로 써서 의사 소통을 했다. 그녀가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해서 피아노를 친다고 하여 중국어로 된 예수사랑 하심을 보여주고 노래하라고 하니 정확한 음정과 박자로 노래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찬송가를 그녀가 노래하는 것을 보고 나는 너무도 기뻤다.

 

나는 카오 양에게 주일인 오늘 11시에 호텔의 문팀장의  방에서 주일예배를 본다고 하면서 같이 참석하자고 했다. 그리고 내가 현지에 가지고 간 주일예배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영어가 병기되어 있어 주일예배가 무엇인지를 그녀가 알게 되었다.  그녀가 우리들과 함께 예배를 보겠다고 하였다. 나는 집에 있는 너의 가족과 이웃사람도 오라고 하였다.  

 

예배참석을 약속했던 카오 양이 근무자리를 떠날 수 없어 예배를 참석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매일 아침에 만나면 악수를 한 40대 중반의 뚱뚱한 청소부 아주머니를 참석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녀가 비번이라 참석할 수 없음을 알고 다른 여인들을 참가하게 해달라고 하였고 어느 누구라도 우리의 주일예배에 참석하겠다고 하면 크게 환영한다고 하였다. 결국 카오 양은 자리를 비울 수 없어 20대 초반의 청소담당 여인 네 사람이 우리의 예배에 참석하기로 했다. 운전기사와 여인 4명 그리고 우리 일행 8명, 모두 13명이 하나님께 주일 예배를 드렸다.

 

이 여인들이 우리 방에 왔을 때 아직 예배 시간인 11시가 안되어 그 여인들에게 악보를 나누어 주고 함께 준비 찬송을 하였다. 찬송가 411장 예수 사랑 하심과,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중국어로 두 번, 우리말로 한 번 모두 세 번을 하였다. 팀장 문집사께서 그들 만이  한 번 찬송가를 불러보라고 하였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그들은 그 찬송가를 음정과 박자가 맞게 불렀다. 나를 비롯한 우리 일행은 그들의 능력을 놀라와 하였고, 찬탄하였다. 호텔 청소를 하는 여인들이기 때문에 교육 수준이 결코 높지 않았을 터인데, 그 여인들은 은혜 넘치게 하나님을 찬송했다.

 

예배 순서에 따라, 설교순서가 되어, 문팀장께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여 5분쯤 되었을 때 호텔 본부에서 그들을 찾아서 예배 중에 그들은 우리 방을 나갔다. 우리들끼리 남은 예배순서를 마치었는데, 그들의 예배참여로 우리는 크게 고무되었고 감격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카오양이 우리와 함께 예배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서 나는 우리 일행이 그녀의 집을 방문하겠으니,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과 이웃을 열 사람을 모아달라고 하였다.

 

그녀는 나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드리면서 그녀의 어머니가 아프니 낫게 기도해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그녀의 집에서 그녀의 어머니와 이웃사람 넷과 함께 기도회를 가졌다. 기쁜 소식도 전했다. 카오 양은 이 기도회에서 주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우리는 그가 기독교교인이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그녀는 우리의 이 선언을 기뻐하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병을 치유해 달라는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는 고마워하였으나, 영접기도는 그녀가 믿는 신이 있다고 거부하였다. 이웃에서 온 사람들도 영접기도는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선교가 금지되어있고, 잘 못하면 잡혀가는 어둠의 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오 양을 통한 주일 날의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나와 우리 일행은 크게 기뻐했고, 고무됐고, 감사했다. 그날 주일 날 밤 한 밤중에 난 또 깨었다. 세상은 역시 조용했고, 방은 어두었다. 팀장과 현지인 운전사는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교회로 돌아가면 오늘 일을 모든 성도들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고. 그 밤처럼 눈물은 안 나왔다. 2008. 9. 13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