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럼

주님의 은혜를 노래한 함정식 시인께

김일중 2010. 2. 9. 20:02

주님의 은혜를 노래한 함 정식 시인께,                              

2010년 2월 8일

김 일 중

 

함 정식 시인께서 저의 댓 글에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 시인의 분홍 꽃 이란 시가 주님의 은혜를,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임재를 노래하셨다고 해서 다시 함 시인의 시를 여러 번 천천히 읽었습니다. 시에 대한 힌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 시인께서 주님의 은혜를 노래하셨다고 하니,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썼다고 하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가 생각납니다. 이 시는 제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것 입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 되지요."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 라고.  이 시의 깊은 뜻은 모른 다해도 그 의미는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습니까?

 

저는 이 시를 배울 때, 국화 한 송이 피는 것이 소쩍새 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고, 국화 한 송이 피는 것이 천둥과 무슨 연관이 있어 이런 시를 썼나 했습니다. 그러나, 불교 관을 조금 안 뒤, (불교란 단어만 써도 사탄이라 하시는 분이 있는데, 저는 분명 기독교도 입니다. 역삼 역 주변의 교회에 다니는 서리 집사입니다). 왜 서정주 시인을 불교시인이라 칭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은상 시인을 왜 무상시인이라고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는 국화 한 송이 피는 것과 소쩍새 우는 것과 천둥이 우르릉 대는 것이 다 서로 연관이 되었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종교는 이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관이 되어 있어 영향을 주고 받고 합니다.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 멀리 인도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한 어린이가 굶어 죽었다고 한 다면 그 죽음도 우리와 연관되어 있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그 종교의 교리는 터무니 없는 것 같지요? 그런데,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 가요? 제가 저의 반 지하 방하나를 어떤 젊은이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어는 날 그 반 지하 방에서 인기척이 거의 한 달간 안 났습니다. 그래서 그 방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굶어 죽어 있었습니다. 이럴 경우, 이 젊은이의 죽음이 저와 전혀 무관하다고만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 우리 집에서 일어난 한 젊은이의 죽음을 인도까지 한번 확대해보시면, 불교의 세계관이 터무니 없는 궤변이라고 자신 있게 매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불교 관 위에서 이 국화 옆에서를 한 번 읽어 보세요. 다른 맛이 나지요?

 

 

함 정식 시인께서 쓰신 분홍 꽃 비가 주님의 은혜를 노래하셨다고 해서 불교교리를 노래했다는 서정주 시인의 시를 이야기했고, 이 시를 말하다 보니, 불교세계관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혹시 저를 기독교 옷을 거짓으로 입은 사탄의 종이라고 생각할 가 걱정입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함 시인의 시를 읽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댓글을 썼더니, 함 시인이 저의 댓 글에 고맙다고 글을 써주셔서 또 글을 썼습니다. 함 시인께서 앞으로 불멸의 찬송 시를 많이 쓴 이삭 왔스 처럼 뛰어난 시를 많이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정주 시인을 뛰어 넘는 기독교시인이 되시기를 주 님께 기도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