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

(C. S. 루이스를 사탄의 종이라는 글에 반발한 저의 글에) 댓글을 주신 강한 햇살님께,

김일중 2010. 3. 23. 02:23

 

(C. S. 루이스를 사탄의 종이라는 글에 반발한 저의 글에)

댓글을 주신 강한 햇살님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니디아 연대기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법, 요술, 마술 등은 기독교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스가 어렸을 때 많은 동화책을 읽은 것은 제가 압니다. 한 인격체란 것이 그가 일생 동안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의 집합체인 것을 감안하면, 그가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책이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겠지요.


성령이란 호칭은 성경에서도 님이란 호칭을 안 붙이고 있지요.  붙이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스가 성령하나님을  이것 저 것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본을 보기 전에는 루이스를 탓 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번역자의 무의식적인 잘 못일 수도 있습니다. 20세기 최고 지성의 한 사람이란 평을 듣는 대학교수가, 더구나 그가 믿고 의지하는 성령 하나님을 이것저것 이라고 했다면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루이스는 그의 저서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지 그 분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그 앞에 무릅을 꿇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 생명의 기독교를 윤리적 기독교로 격하시키는 것이, 루이스의 한계, 아니 어쩌면 루이스의 목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란 귀하의 말씀에 대해서는 반론으로 드릴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예만  말씀 드려 볼가 합니다. 루이스는 예수님을 도덕 선생으로 격하시키지 말라고 강력하게 말했는데, 저는 이 말에서 기독교가 다른 고등종교와 다른 점이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초인격적인 신의 개념을 가진 종교는 오직 기독교 뿐” (장경철과 이종태 역 “순전한 기독교” 250쪽, 영어 원본 160쪽, (But the Christians are the only people who offer any idea of what a being that is beyond personality could be like. All the other people, though they say that God is beyond personality, really think of Him as something impersonal: that is, as something less than personal. If you are looking for something super-personal, something more than a person, then it is not a question of choosing between the Christian idea and the other ideas. the Christian idea is the only one on the market" 아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다른 고등종교와 기독교를 차별화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최상의 종교라고 자신 있게 세상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루이스는 그의 저서 “고통의 문제”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종교의 네 번째 성분 내지 요소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한 유대인이 태어나 자신이 바로 자연에 출현했던 그 두려운 존재이자 도덕법을 부여한 존재의 아들이라고, 또는 그 존재와 하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워낙 충격적인 주장 - 역설적일 뿐 아니라 기괴하기까지 해서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쉬운 - 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 관점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홍성사가 발행한 이종태 번역본, 34쪽).


이 번역본의 원본을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The fourth strand or historical element. There was a man born among these Jews who claimed to be, or to be the son of, or to be 'one with", the Something which is at once the awful haunter of nature and the giver of the moral law. The claim is so shocking-a paradox, and even a horror, which we may easily be lulled into taking too highly-that only two views of this man are possible. -that only two views of this man are possible. “ (The Problem of pain 의 13쪽).  이 글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윤리 (도덕법) 뒤에 계신 분이지요. 윤리를 뛰어 넘는 분이시지요. 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윤리 선생님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귀하께서 루이스의 책을 읽어 보신다고 하니 읽어 보시면 제가 왜 C. S. Lewis를 “사탄의 종” 이라고 매도하는 것에 반발하는지 아시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개신교회에 다니는 평신도입니다. 서리 집사입니다. 신학 논쟁을 할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끼리 상대방이 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그를 “사탄의 종” 이라고, 가장 모욕적인 말로 매도하는 것은 결코 칭찬 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을 쓴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