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성난 민심’은 없었다(4차 시위 참관기(參觀記)
역시 ‘성난 민심’은 없었다(4차 시위 참관기(參觀記)
2016년 11월 19일 김 일 중 씀
(조갑제 닷컴 회원토론방에 쓴 글)
19일 오후 광화문 시위 현장에 참가하여 오후 5시부터 2 시간 동안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참가 인원은 얼마나 되고, 그들의 주장은 무엇이고, 시위의 열기는 어떠했으며, 그들은 성나있었나, 소위 ‘성나 민심'의 실체는 있는 것인가, 시위 분이기는 어떠했나, 시위가 청와대를 향한 공갈과 협박으로 받아 들여 질 수 있을 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거기에 역시 성난 민심은 없었다. 인원 동원도 별것 아니었다. 그들의 주장도 열기가 부족했고 갈구(渴求)도 없었다. 위협적이지도 못했다. 차라리 이번 시위를 하지 말고, 지난번 시위를 “백만 인파” 라고 계속 나팔을 불어대면서 청와대를 공격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패한 시위라고 깎아내리면 주최 측은 무엇이라 반박할까?
소위 ‘성난 민심’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참관기를 써 본다. 참가 인원이 11월 12일 (이하 지난번 시위)의 그것의 25% 밖에 안 되었다. 주최 측의 사회자는 이번에는 서울에 50만 그리고 전국 각처에 50만이 모인다고 말하였다. 데모행사가 재미없어 7시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 오니 그 곳에 사람이 없었다. 광화문 사거리에 사람의 인파(人波)가 있었지, 광화문 네거리에서 150m 만나와도 보행이 자유로울 정도로 데모 군중이 없었다.
데모 구호는 지난번 구호에 구속 이란 단어가 추가 되었을 뿐 새로운 구호는 없었다. 데모 열기는 그저 그랬다. 운동 경기에서 자기 팀을 응원하는 열기를 100이라 한다면 그 열기는 30이나 될까? 군중의 함성도 그저 그랬다. 성난 민심답지 않았다. 죽지 살기로 덤비는 싸움터의 함성도 아니었다. 선동하는 연설자의 주장도 시원치 않았고, 지난 번 시위 때는 힘차고 강한 멜로디의 노래고 많았고 가수의 흥분된 노래도 있었는데 이번 시위에는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번 시위 때는 참가자들이 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는데 이번 시위에서는 그런 즐거움과 기쁨이 없었다. 그저 그랬다.
이번 데모에서는 전문 선동자가 없이 시민 고발자들을 내세워 세월호 타령, 삼성그룹의 부당 노동행위, 백남기의 억울한 죽음, 가습기 파동, 개성공단 폐쇄 등 좌파들이 그동안 귀가 따갑게 들려준 정치 구호들에 대해 박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했는데 그 모든 비판들이 다 최 진실이 관련된 것처럼 욕을 해댔다. 고교생과 수능 시험을 마친 학생을 연사로 세웠는데 그들은 어른보다 영악하게 박대통령을 비판해서 박수를 받았다.
박대통령의 퇴진과 하야를 반대하고 나라가 조용하기를, 평온하기를 원하는 나로서는 데모 군중이 생각보다 훨씬 적고 그들의 구호나 함성이 죽기 살기 식이 아니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그들이 이번에 일주일 전보다 더 많은 군중을 동원하여 청와대 사람들과 한나라당 사람들이 기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였다. 그러나 데모 현장을 보고서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데모 군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부슨 프랑스 대혁명의 그 군중이 안 된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의 홍위병은 절대 안 된다는 보장은 없다. 인민재판의 판사가 되어 누구누구를 죽이라고 함성을 지르지 않는 다는 보장은 없다. 세계사에서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 큰 사건에 대한 재판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안다. 그 당시에는 그 재판이 여론으로 보아 옳았으나 세월이 많이 지나 100년 후에만 보아도 그 재판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시위가 없기를 바란다. 모든 잘잘못은 법이란 잣대로 판단되기를 바란다. 그 잣대가 절대로 여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