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없는 권총으로 위협하는 6차 광화문 시위. 청와대 문을 열어 놓아라.
총알 없는 권총으로 위협하는 6차 광화문 시위. 청와대 문을 열어 놓아라.
2016년 12월 3일 김 일 중 씀
(조갑제 닷컴의 회원토론방에 쓴 글)
제 6차 광화문 시위를 한다고 한다. 한층 더 압박을 세게 해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무섭고 두렵게 해서 항복(降伏)을 받아내려고 한다. 은근히 폭력을 사용할 수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 주면서 위협한다. 시위를 주체하는 자들은 지난 시위를 미화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시위를 항복할 때 까지 계속 할 모양이다. 자유민주(自由民主)의와 시장경제(市場經濟)를 옹호하는 우파들은 이런 위협(威脅)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내 친구 이 육랑과 김 대덕은 70년도 초에 미국으로 이민(移民) 갔다. 거기서 육랑은 자동차 수리 공장을 운영하여 백만장자가 되었다. 김 대덕은 거기서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힘들게 살았다. 미국에서 열린 동창회에서 두 사람이 크게 다투었다. 이유는 못 사는 대덕이가 잘 사는 육랑이를 조롱하다가 오히려 육랑으로부터 치욕(恥辱)적인 조롱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대덕이가 밤에 권총을 가지고 육랑이를 죽이러 갔다. “그래 네가 나를 죽이려 왔다고, 그래 나를 쏘라” 고 말하면서 가슴을 벌려 준 것은 육랑이었다. 죽이려 간 대덕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은 육랑을 쏘지도 못하고 풀이 죽어 돌아왔다.
군대 생활에서 일어난 일이다. 동료 중에 이 수천이란 친구가 있었다. 사단 사령부 정보참모 실에 근무했다. 육군사관학교을 다니다가 퇴교하고 군에 입대했다. 병장 하나가 심하게 그를 괴롭혔다. 그는 어느 날 정보참모가 사무실에 남겨 놓고 간 권총을 가지고 밤에 그 병장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네가 나를 죽이겠다고? 그 권총에는 실탄이 없어” 라고 불같이 성낸 유도 4단인 그에게 내 친구는 죽도록 맞기만 했다. 그 병장은 규정에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해외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거짓으로 미친 척 행세하여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건축기사 한 사람이 있었다. 30세도 안 된 일반사원이다. 그의 방에 들어가면 그가 그의 방에 일단 들여간 모든 것은 다시 방 밖으로 내오지 않아서 온갖 쓰레기가 그의 방에 가득 찼다. 그는 쓰레기와 악취(惡臭)와 함께 살았다.
아무도 그 기사(技士)를 나무랄 수 없다. 한 번 그를 비난(非難)하면 그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꼭 보복을 하고 싸움을 걸었다. 현장 소장이 그를 나무랐다. 그는 그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간에 자는 소장을 깨웠다. 상의(相議) 들릴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조용한데서 말씀드리겠다고 해서 그의 뒤를 따라 갔다. 그런데 그 사원은 갑자기 그를 껴안고 깊이가 가슴까지 차는 똥구덩이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두 사람이 똥구덩이에서 목욕을 했다. 현장 소장은 그가 당한 일이 창피해서 다른 이들에게 말도 못하고 그를 징계(懲戒)하지도 못했다.
6차 시위를 주도하는 자들은 위의 어느 예에 해당할까? 첫 번 째에 해당할 수도 있고 두 번째 예에 해당할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 예에 해당한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세 번째는 아니다. 계속되는 광화문 시위는 최순실 사건을 빌미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좌파의 만용(蠻勇)이다. 위협(威脅)이다. 공갈이다. 협박이다. 시위 주최자는 총알 장전 안 된 권총을 들고 우파(右派)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 속지 말자.
여기까지 읽은 이들은 6차 시위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제안은 췌사(贅辭)이다. 청와대 진격(進擊)이 무슨 놈의 6. 25 사변 때의 평양진군처럼 무용(武勇)을 자랑하는데, 청와대 문을 열어주라. 청와대에 들어가서 분탕질을 하도록 내벼려 두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