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를 만났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 만났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소.
최순실 씨를 만났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 만났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소.
2016년 12월 16일 김 일 중
(조갑제 닷컴 회원토론방에 쓴 글)
잔 다르크(1412~1431)가 마녀(魔女) 재판을 받고 19세에 불에 타 죽었다. 그는 문맹(文盲)이었다. 그가 마녀라는 것을 입증(立證)하기 위해서 50여명이나 되는 당대의 유명한 신학자들이 검사가 되어 그를 심문(審問)하였다. 그녀에게 A냐? B냐 물어서 A라고 답해도 죽고 B라고 답해도 올가미에 걸려 그는 죽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잔 다르크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변을 4개월 동안 잘해서 50명의 검사들은 그녀를 기소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묵비권(黙秘權)을 사용하고 때로는 반박(反駁)을 해서 검사들의 공세를 잘 막아내었다. 결국 그녀는 ‘나는 마녀’라는 고백서에 서명함으로써 화형(火刑)을 당했는데, 문맹인 그녀를 검사가 속여서 만든 거짓 문서에 서명(署名)해서 죽게 되었다.
한 소년이 있었다. 건강한 편이 아니었고 좀 허약했다. 산수는 잘 했으나 다른 학과는 좋은 점수를 못 얻었다. 초등학교5학년 때 반에서 기운이 가장 센 친구가 때려서 무의식(無意識)적으로 그가 자지고 있던 칼을 들고 그 학생과 맞섰더니 그 친구가 더 이상 때리지 않았다.
그가 대학에 진학했다. 총학생회장에 나섰다. 경쟁자를 칼로 위협해서 중도 사퇴(辭退)시키고 단독으로 선거 없이 학생회장이 되었다. 그는 학생회장을 연임(連任)했다. 학생회장을 두 번 한 것이다. 이때도 그는 칼로 대학총장을 위협했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여학생을 칼로 위협해서 여의사와 결혼도 했다.
칼로 위협받은 그 대학 총장은 그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그를 그가 세운 신문사의 기자로 임명(任命)했다. 그는 취재기자를 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칼로 동료기자를 위협해서 훌륭한 기자 생활을 했다. 동료들에게 기사를 쓰면 보여 달라고 해서 편집국에 송고(送稿)했던 것이다. 그는 그 총장의 다른 기업(企業) 일에 관여해서 어려운 일들을 칼로 많이 해결했다.
세월이 흘러 이 사람이 그 서울 소재 전국 일간지(日刊紙)편집국 부국장이 되었다. 이 사람의 위세(威勢)는 대단했다. 그 누구도 그의 눈 밖에 나면 퇴사해야 했다. 그는 소년 때의 허약한 체구가 아니었다. 운동으로 계속 단련해서 이제는 무력(武力)으로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게 되었다. 그는 당당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도 천적(天敵)은 있기 마련이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기자가 하나 있었다. 키가 크기도 않고 그렇다고 작은 편도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비범(非凡)한 데가 있었다. 그가 입사 후 3년 쯤 되었을 때 야근을 하다가 책상위에 담요를 펴고 잤다. 이것을 그 편집국부국장에게 들켰다.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되레 호통을 치면서 맞섰다. 잠 못 자서 병생기면 치료비를 대주겠냐고 죽기 살기식으로 덤벼서 그 부국장이 그를 피해버렸다.
외근(外勤) 기자를 못하고 내근(內勤) 기자를 하던, 그래서 회사에 불만이 많았던, 이 용감한 가자가 야근을 하던 날 밤에 편집국장실에 누가 대변(大便)을 보는 일이 벌어졌다. 회사에 난리가 났다. 누가 대변을 보았느냐고 그 야근자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답변뿐이었다. 그가 한 짓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모른다고 일관되게 답변했다. 덤덤하게 답변했다.
그 신문사는 이 똥 사건으로 그를 기사(記事)를 쓸 수 없는 판매부로 발령을 냈다. 그는 인사조치가 부당하다고 기자협회에 (記者協會)에 제소(提訴)했다. 조사를 나왔다. 조사자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날 밤 똥을 누었소?” “나는 똥을 쌌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 누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긍정(肯定)도 부정(不定)도 아닌 매우 탁월한 답변을 한 것이다. 그가 혹시 잔 다르크의 재판기록을 읽은 것은 아닐까?
지금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하나라도 범인을 만들려고 혈안(血眼)이 되고 있다. 또 거기에 불려 나온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답변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다. 최순실 씨를 만났지요?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에, 최 씨를 만났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 만났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소 라고 답변(答辯)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만났다고 이실직고(以實直告)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할 때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