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두 얼굴을 읽고 (독후감)
‘지식인의 두 얼굴’을 읽고 (독후감)
2020년 2월 8일 김 일 중
이 책의 저자 폴 존슨은 책을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 200년간 지식인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증대해 왔다.” 이 “세속적인 지식인들은 이신론(理神論)자, 회의주의자, 무신론자였다.” 그들은 “역사를 통해 얻은 포괄적인 지혜, 전통이 남긴 유산, 조상들의 경험을 통해 얻은 기존의 규범 등을 선별하여 수용하거나 총체적으로 거부했다.” (이 책의 9 페이지에서 인용).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사회의 병폐를 진단하고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사회의 구조뿐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기질까지도 탈바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 페이지).
그러면 지식인들의 위의 진단은 옳았을 가? 그들은 그들 힘으로 위의 과업을 달성할 수 있었는가? 그들의 기존 가치 부정과 새로운 사상은 인류에게 지상 천국을 선물할 수 있었는가? 저자는 이 물음 대해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인류의 운명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 아래 무고한 수백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을 목격한 우리의 비극적인 20세기가 남긴 중요한 교훈은 지식인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627 페이지). 그는 지식인들의 주장은 헛소리였고 그들이 인류에게 유익을 주기는커녕 큼직한 재앙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검증한 지식인들은 1)장 자크 루소, 2) 피시 비시 셸리, 3) 가롤 마르크스, 4) 헨리 입센, 5) 레프 톨스토이, 6) 어니스트 헤밍웨이, 7) 베르톨트 브레히트, 8) 버트런드 러셀, (9) 장 폴 사르트르 10) 에드먼드 윌슨, 11) 빅터 골란스, 12) 윌리엄 헬먼, 13) 에드먼드 윌슨, 조지 오웰, 노엄 촘스키, 이블린 워, 시럴 코넬리 등 18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체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신봉하거나 그 주변에 머물렀던 지식인들이다.
저자는 이 책의 끝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식인들이 습관적으로 망각하는 것, 즉 인간이 관념보다 중요하고 인간이 관념의 앞자리에 놓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만 한다. 또 폭정 중에서 최악의 폭정은 사상이 지배하는 무정한 전제정치 이다.” (이 책의 끝 628 페이지). 위 글에서 사용된 단어, 관념과 사상을 이데오르기 (Ideology)로 바꿔 읽으면 그 뜻이 더 분명해 진다. (Ideology : A set of beliefs, especially one held by a particular group, that influences the way people behave).
폴 존슨은 “지식인을 조심하라”는 결론을 이끌기 위해서 그가 검증한 지식인들 각 개인을 어떠한 잣대로 검증했나? 그는 그의 책 10 페이지에서 이렇게 썼다. “이제는 지식인들의 행동을 공적, 사적인 모든 면에서 검토해야 할 때다. 특히, 필자는 윤리적, 도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지식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 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지식인들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 가족과 친구, 동료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행동했는가? 그들은 실제 성적(性的), 금전적 문제에서 올바르게 행동했는가? 그들은 진실한 말을 하고, 진실한 글을 썼는가? 그들의 주장은 시간과 실천의 시험을 어떻게 견뎌냈는가?”.
이 책에 따르면, 루소는 어린이의 육아와 교육을 위해 에밀을 쓴 철학자요 사상가인데, 그가 그의 자식 넷을 이름도 안 짓고 고아원에 버렸다. 사생아 1명은 타인에게 주어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친자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땅에 노동자의 지상 천국을 만들기 위해 그 노동자를 위해 일생을 헌신했다는 마르크스가 그가 하녀로 45년 동안 함께 산 여인에게 동년 한 잎 주지 않았고, 그 여인과 간음해서 얻은 아들을 남에게 주고 자기 자식이란 것을 끝까지 숨기고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는 일생을 일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를 “착취”했고, 아내를 착취했고, 딸들을 착취했고, 친구 엥겔스를 착취했다. 처가도 착취했다. 그의 인생은 남을 뜯어 먹고 사는 착취의 연속이었다.
책에서 검증된 각 지식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장 자크 루소 (1712-1778)를 저자는 스위스 태생의 “위대한 정신병자”로 묘사한다. 루소가 유일하게 사랑했다고 고백한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소피 두로토. 그녀는 루소를 이렇게 평결했다. “그는 겁이 날 정도로 못생겼어요. 그는 딱한 사람이었고, 그는 흥미로운 미치광이였어요.” (54 페이지).
루소는 그가 쓴 책 사회계약론은 당대에 읽은 이가 없다. 루소의 고백록은 그의 성생활을 제외하고는 거의 거짓된 이야기다. 그는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양어머니가 양육했는데, 그가 성공했을 때도 그녀를 돌보지 않아 그녀는 영양실조로 죽었다. 그는 개와 고양이는 사랑했으나 아내와 주변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과 늘 다투고 싸웠다. 그의 친구 볼테르는 그가 매독환자였고 살인자라고 비난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는 아이 네 명을 고아원에 버렸고 사생아 한명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렸고 전혀 돌보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어버이로서 저지른 죄악은 그의 이념적 창조물인 미래의 전체주의 국가로 이어졌다.” (47페이지).
“현대의 어느 학자는 루소의 단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루소는 마조히스트, 노출증 환자, 신경쇠약 환자, 우울증 환자, 자위행위 중독자, 잠재적 동성애자, 정상적인 부성애를 갖지 못한 자, 도벽환자, 유치증 환자였다.”
퍼시 비시 셸리 ( Percy Byssh Shelly, 1792-1822)는 영국의 시인이다. 저자는 셸리를 “냉혹한 사상가”로 묘사한다. 그는 시인은 세상의 승인을 받지 않은 법률제정자라고 생각하고 사회가 완전히 타락해서 반드시 개혁돼야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글을 쓰고 시를 지었으나 그의 개인 생활은 개판이었다. 그는 무신론자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도움으로 배우고, 그의 작품을 출판할 비용을 지원받았음에도 가족을 모두 배신하고 패륜아로 살았다. 그의 친구가 그의 여동생과 결혼하자 그의 어머니가 그 친구와 간통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그 결혼을 허가 했다고 무고도 했다. 그는 세 번 결혼했고 7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이들의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첫 아내는 자살했다. 두 아내에게는 그의 친구들과의 동침을 허용하고, 권고하였으며, 그의 무제한적인 간통을 아내들이 인정하라고 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렸다. 그러나 한 번도 갚은 적이 없다. 그는 익사했다.
카롤 마르코스(Karl Marx, 1818-1883)를 저자는 “저주 받은 혁명가”로 묘사한다. (99페이지).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실패한 학자였지 과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시인과 저널리스트, 도덕주의자의 세 요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104 페이지). 그는 시적인 자질이 뛰어났다. 그는 경구와 격언을 멋들어지게 사용했는데, “노동자에게는 국가가 없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의 구호는 그가 만든 것은 아니다. 이미 있던 것을 그가 사용한 것이다. (108 페이지).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이해 못했다. 그의 저서 자본론에는 조직화된 원칙으로 작동할만한 핵심 주장이 없다.”(119 페이지). 자본론은 부정직한 책이다. 그는 이 논문을 쓸 때, 인용했다는 원문을 고의로 왜곡시키고 없는 말도 있는 것처럼 첨부시켜 거짓말을 했다. 논문의 결론을 미리정해 놓고 자료를 수집했다. 한마디로 사기 논문을 쓴 것이다.
마르크스는 일하기를 싫어하고 돈을 관리할 줄 몰라 늘 빚에 쪼들려 살았다. 그래서 고리대금업자를 증오했다. 그는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 때 이 고리대금업자의 자리에 자본가를 집어넣어서 증오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지식인들의 광대한 저작들이 두뇌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개성의 산물이란 사실은 약간은 서글픈 일이라”고 논평한다.(130 페이지).
마르크스는 “욕설을 좋아했고, 호전적이고, 적의에 불탔고, 과음했고, 싸움질을 잘했다. 암살도 옹호했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정적에 관한 정보를 경찰에 제보했다. 그는 늘 분노에 차 있었는데, 레닌, 스탈린, 모택동은 마르크스의 서적에 기술된 분노와 폭력을 실행에 옮겼다.” (134 페이지). 그는 “민주주의를 증오했다. 선거를 증오했다. 윤리학을 비웃었다. 혁명에 방해된다고 본 것이다. 그는 병약했다. 늘 종기에 시달렸다. 수많은 종기로 신경쇠약에 걸렸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부모 형제와도 의절하고 살았다. 134, 135 페이지).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6-1906)을 저자는 “거짓 유형의 창조자” 라고 부른다. 그는 노르웨이 극작가 이다. 인형의 집으로 유명하다. 그도 마르크스처럼 민주주의와 의회를 증오 하였다. 그는 자신을 무정부주의자로 보았는데, 무정부주의를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와 동일하게 보았다.
그는 글과 입으로는 여성의 해방과 권리를 위해 노력했으나 실제 생활에서는 그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아내를 냉담하게 대했다. 아내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고 결혼 생활 자체를 저주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결혼 생활은 모든 사람에게 노예의 낙인을 찍는다”고 적었다. (175 페이지). 늘 이혼한다는 구설수 속에 살았으나 이혼은 안했다.
그는 18세 때 10살 많은 약국의 가정부와 통정하여 사생아를 낳았다. 그는 이 아들을 친자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돕지 않았다. 유산도 남겨주지 않았다. 그 가정부는 노년에 실명했는데도 돕지 않았다. 그의 가족과도 의절하고 살았다. 아버지를 40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 가족을 돕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모 형제를 기피했다. 그는 돈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했다. 그는 말년의 25년 동안에 수입의 반에서 3분의 2를 국채에 투자하여 부를 모았다. 그런데도 매우 인색하게 살았다.
그는 특이하게 훈장과 메달에 병적인 집착을 가지고 살았다. 그는 겁쟁이였다. 공포증이 있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 들어박혀 있기를 잘했다. 그는 일찍부터 신앙을 포기했다. 그는 병적인 증오와 그 증오 뒤에 공포를 가지고 살았다.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했고 고소공포증까지 갖고 살았다. 그는 화를 내는데 전문가 이었다. 그는 원죄와 징벌로 늘 두려워했다. 그는 늘 분노 속에 살았다.
레프 톨스토이 (Lev Nikolaevich Tolstoi, 1828-1910)를 이 책의 저자는 “하나님의 큰 형”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러시아의 대문호의 목표가 이 땅에 그리스도의 영적인 왕국을 세우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형제, 그 중에서도 형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200 페이지). 그는 그 자신을 예수의 반열에 올렸다. 그는 “스스로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그의 경향은 사회개혁가가 되면서 더욱 강해졌다.” (199 페이지).
톨스토이는 불후의 명작인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를 쓴 천재적인 작가였으나 키는 작고 인물도 보잘 것 없어서 시골 농부 같았다. 그는 말년에 노동자편을 든다고 작위도 버리고 실제 농부차림으로 살았다. “그의 사납고 무자비한 눈빛과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눈매는 매서웠다. 그는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였다. 그는 군대에서 매우 용감했다.” (205 페이지). 그는 루소를 읽었다. 성경을 읽었다. 많은 독서를 했다. 그러나 역사에 대해 무지했다. 대학을 마치지 않고 독학한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와 의회를 혐오했다. 마르크스나 입센과 마찬가지로 선거를 부정했다.
앞에서 본 지식인들처럼 톨스토이의 개인 생활도 엉망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어머니로부터 300 에이커의 토지와 그의 개인 재산이나 다름없는 330명의 농노를 상속받았으나 노름으로 다 탕진하고 빚에 허덕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리고는 한 푼도 갚지 않았다. 그는 닥치는 대로 매춘부, 원주민, 집시 그리고 그가 소유한 농노와 바람을 피웠다. 심지어는 그의 어머니 친구와도 동침했다.
그는 농노인 유부녀와의 불륜으로 사생아를 낳았는데, 루소, 마르크스, 입센과 마찬가지로 친자관계를 끝까지 부인하고 교육도 안 시키고 돕지도 않았다. 그는 이 사생아를 그의 아들의 마부로 살게 했다. 그는 소설가로 명성을 얻고 부를 이루었다. 한 때는 땅을 사들이고 가정교사를 5명이나 채용하고 하인을 11명이나 두고 살았으나, 그의 세 형제들을 돕지 않았다. 심지어 큰형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극빈하게 산 형제들에게 땡전 한 입도 주지 않았다. 그는 입만 열면 인류의 사랑을 전도했으나 그의 아내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실제의 톨스토이는 심한 이기주의자였고 위선자였다. 그는 여자를 그의 성욕충족의 도구로만 생각했다. 그는 유별나게 강한 성욕 때문에 고통을 당했는데 80세 까지도 왕성한 성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성적인 괴물이었다. 그는 34세 때, 그보다 16세 아래인 양순한 여인과 결혼했는데, 이 여인은 그의 왕성한 성욕을 감당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 여인은 톨스토이의 이기적이고 주기 중심적인 탐욕 때문에 나중에는 인류의 3대 악처 중의 하나로 기록된다. 실제 그의 아내는 악처와는 거리가 먼 여인이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나머지 지식인들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그들에 관해서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은 책을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잎에서 언급한 지식인들에서 본 봐와 같이 나머지 지식인들도 이기적이고 탐욕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다. 그들의 개인 생활들은 패륜적이고, 성적으로 문란하다. 여자를 짐승처럼 다룬다.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꾼다고 글 쓰고 주장한 내용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다 망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래서 저자 폴 존슨은 “지식인을 조심하라”고 한 것이다. 그는 특히 좌익 지식인을 조심하라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지난 200년간 세계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유명한 지식인 18명의 열전(列傳)이다. 책의 원 제목은 영어로 지식인들 (“Intellectuals”)이다. 그러나 을유문화사가 “지식인의 두 얼굴”로 바꾸었고 부제(副題)를 “위대한 명성 뒤에 가려진 지식인의 이중성”이라 붙인 것 같다. 두 얼굴의 지식인은 길지 않은 위인전(偉人(傳)들의 묶음이다. 이 위인전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 그 어떤 소설가도 이처럼 리얼하고 실감 있게 악한 지식인들을 질 그릴 수는 없다. 이 위인들의 어두운 면은 결국 우리 인간 모두의 어두운 면에 대한 폭로인데, 저자는 그 어느 소설보다도 인간의 본성을 재미있게 가감 없이 잘 묘사했다. 이 책의 역자는 이 책을 읽고 추악한 지식인들을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한다. 그렇다. 너무 이기적으로 살지 말고 너무 많이 악한 짓을 하지 말고 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