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역사를 읽고 (독후감)
‘유대인의 역사’를 읽고 (독후감)
2020년 3월 3일 김 일 중
이 책의 원명(原名)은 ‘A story of the Jews’이다. 책의 내용은 한글 제목과 같이 한마디로 ‘유대인의 역사’이다.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에 따르면, Story는 ‘A record of something in the past life of a person, family or place; the set of facts are known about somebody's past life’이다. Jew는 ‘A member of the people and cultural community whose traditional religion is Judaism and descended from the ancient Hebrew people of Israel’이다. 이 두 단어의 정의에 따라 이 책의 제목을 좀 더 풀어 쓰면, 고대 이스라엘의 히브리 민족의 후손으로 그들의 전통종교인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 공동체에 관한 과거의 생활의 기록이다. 이 책이 기술한 유대인의 역사의 시간과 공간은 4,000년이고,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소련, 호주, 캐나다, 미국, 브라질,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 등 전 세계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책은 성경 속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1948년의 이스라엘의 독립에서 끝난다.
누구나 다 그 뜻을 아는 역사(History)란 단어를 정의하면서 영영사전을 언급한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역사에 대한 개념과 서양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것과는 다른 데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동아 국어사전에는 역사를 두 가지 뜻으로만 정의 하는데, Oxford 영영사전은 그 뜻을 여섯 가지로 정의한다. 번역된 책을 읽을 때는 가끔 영영사전을 참고하면 글의 내용이 선명해진다.
내가 읽은 책은 살림출판사가 2005년에 펴낸 세 권 (7부)인 모두 1,353 쪽의 책이다. 저자는 영국인인 역사학자이고 저널리스트인 Paul Johnson (1927-)이다. 그는 대처 (Margaret (Hilda) Thatcher, 1929-2013) 영국수상의 연설문을 썼다. 이 사실 하나만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성명해준다. 50권의 책을 썼다. 번역자는 김한성.
저자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보다 독립적이며 특별난 정체성을 창출하였다. 그들은 오늘날 까지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다. 이러한 비범한 지속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 일까? 다른 민족도 해내지 못한 유대인들만의 동질성을 지켜온 힘은 과연 무엇인가? (제 1권 11쪽에서 인용). 그는 “역사가 하나의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인류도 하나의 운명을 진니고 있다는 점을 유대인보다 강력하게 주장한 민족은 결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또 질문한다.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삶에 목적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 아니면, 그 같은 노력은 무익한가?” (1권 12쪽). 그는 이어서 더 큰 질문,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한다. “ 우리는 이 땅에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역사란 사건들의 연속에 불과한 것인가? 인류의 역사가 다른 존재의 역사, 예를 들어 개미의 역사와 다른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가? 혹은 하나님의 계획이 존재하는가?”(12쪽).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전에 ‘기독교의 역사’를 저술했다. 그런데 그는 그 책을 쓰면서 “유대인들의 역사가 박식하고 지성적인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조망되는 세계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유대인들을 그 기원으로부터 연구하고 그들이 지녔던 역할과 의의를 밝혀야 갰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10쪽).
저자는 이렇게 이 책을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기억력을 지닌 민족이다” (16쪽). 그는 이 책의 맺음말에서 이렇게도 마무리한다. “인류는 어떻게 해서든 유대적인 관점과 만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법 앞에서의 평등사상,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존엄성, 개인의식, 개인의 구원에 관해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평화와 정의의 기반으로서의 사랑, 인류가 가진 기본적인 윤리의 많은 부분들도 그들에게서 얻었다. 그들은 미지의 존재를 합리화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결과 유일신(唯一神) 사상이 탄생하게 되었고, 유일신을 믿는 세계의 위대한 종교가 태어났다. 현대 세계의 정신적인 산물 대부분은 유대인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 인류를 위한 안내자로 운명 지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 3권 357쪽).
그는 또 이렇게 쓴다. “역사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없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건들을 움직이는 하나의 힘이 있다고 보는 역사의 역동성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생각보다 강하고 끈질기다. 유대인들은 바로 이러한 생각을 가졌던 특별한 민족이었다. 특히, 그들은 이러한 사실들의 생각을 역사 속에 기록하였기에 자신들만의 배역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러한 특별함 속에 아마도 그들의 역사를 열 수 있는 열쇠가 숨어 있을 것이다.” (제 3권 마지막 쪽, 359쪽에서 인용). 존슨의 이 말은, 유대인들은 인류역사를 움직이는 이는 오직 하나의 신, 다시 말하면 유일신(唯一神), God)이지, 인간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역사를 푸는 열쇠도 이 유일신 사상에 있을 것이란 의미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저자가 왜 이 책을 썼고, 책의 내용이 무엇이고, 책에서 어떤 것들이 탐구되었고, 유대인들의 역사를 푸는 열쇠는 유일신 사상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시간과 사건 중심의 역사 서술이 아니고, 사람 중심이고 문화 중심 이다. 저자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관심 속에서 이 책을 썼다.
유대인들의 시간적인 역사는 대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그들의 역사는 BC 2100년-BC 1540년에 그들의 시조인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함으로써 시작된다. 이때의 주인공들은 이삭, 야곱, 요셉 등이다. 이들은 BC 1540년-BC 1200년에 이집트에 들어가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그곳에서 탈출, 시나이 광야애서 40년간을 떠돈다. BC 1200년–BC 1040년에 모세의 뒤이은 여호수아가 이들을 이끌고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그 곳에 정착한다.
가나안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BC 1040년–BC 586년에 사사들의 통치를 거쳐 사울, 다윗,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다. 이들 왕조는 BC 952년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대로 갈라지고 BC 586년에 바벨론에 망한다. 그들은 BC 586년–70년에 아수르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의 고통을 겪었다. 이때의 주인공들은 선지자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등이다.
유대인들은 그 이후 로마 시대(BC 70년-325년), 비잔틴 시대(325년-614년), 페르시아 시대(614년-634년), 초기 아랍 시대(634년-1072년), 셀주크 시대(1072년-1099년), 십자군 시대(1099년-1291년), 노예기병 시대(1291년-1517년), 터키 (오토만) 시대(1517년-1917년), 영국 식민시대(1917년-1948년)를 거쳐 1948년에 나라를 세웠다. 그들은 1900년간의 긴 방랑 생활을 거듭한 끝에 독립 국가를 세웠다. 그들은 마침내 ‘이방인 이고 떠돌이’의 삶을 마치고 저 팔레스타인에서 그들이 영구히 살 수 있는 땅을 마련한 것이다.
이 책의 제1권의 부제(副題)는 성경 속의 유대인들이다. 그래서 이 1권에서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낮익은 이름이 나온다. 아브라함, 야곱, 이삭,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사울, 다윗, 솔로몬, 이사야, 엘리야, 아모스 호세아, 에스겔, 느헤미아, 예레미야 등이 그 아름 들이다. 예수와 헤롯에 관한 기술도 1권에서 다루어진다. 유대인들은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가나안에 들어와 나라를 세우고 살지만 그들의 나라가 바벨론과 아수르에 의해 망해서 다시 고난에 시작되는데 이런 과정이 1권에서 기술된다.
저자는 유대교에 대해 이렇게 기술한다. “20세기 관점에서 보면 유대종교는 가장 보수적인 종교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기원에 있어서는 가장 혁신적이다. 이스라엘인들의 윤리적인 유일신론(論)이 등장하면서 고대의 세계관은 붕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97쪽).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이사야의 영감 아래 순수한 유일신교로 나아갔다. 성경의 초기 본문에는 야훼가 유일하신 하나님이기 보다는 가장 강력한 하나님, 곧, 다른 신들의 영역에서도 활동하실 수 있는 분으로 묘사하는 본문들이 많다. 그러나 제 2이사야에서는 실제적으로도 이론에 있어서도 다른 신들의 존재는 부인된다. “나는 시작이요 마지막이다. 나밖에 다른 신이 없다.” 나아가 하나님은 보편적인 하나님이며, 편재하고 전능한 하나님이란 점이 명확하게 진술된다.” (182쪽). 저자는 이사야 선지자를 구약 성경 속의 “최고의 저술가” (176쪽)로 평가한다. 그는 우상 숭배자였던 므낫세의 통치시대에 살해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느헤미야 이후 200년 사이에 구약성경이 나타났다. 모세의 오경은 622년경에 정경화되었다, 기원전 300년경에 구약성경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예수와 동시대의 헤롯왕은 아내를 사형에 처했고, 장모도 죽였고, 두 아들도 교수형에 처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헤롯 시대에 세계적으로 약 8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팔레스타인에 235만-250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았다. 이는 로마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3세기 말에 예루살렘에 20만 명이 살았다. “죽음 이후의 심판과 영생이라는 사상은 이집트에서 발견된다. 사실 이 사상은 유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278쪽).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동등하게 창조되었기에 기본적으로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고 유대인들은 믿었다. 신약시대 이후 유대인 사회에서는 곧 노예 제도가 사라졌다. 사람은 권리를 지닌 개인인 동시에 의무를 지닌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저자 폴 존슨은 구약 성경의 욥기를 이렇게 해석한다. “욥기는 고대를 위한 책이자 현대를 위한 책이며, 특별하게 선택되었으나 핍박을 받고 있는 유대인을 위한 것이고 무엇보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위한 책이다.” (218쪽). 매우 특이한 해석이다. 욥기의 해석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욥기는 성경이 아니고 그저 문학작품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유대인의 역사의 제 2권은 578쪽이다. 이 책의 부제(副題)는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이다. 이 책에는 부제처럼 유대인들이 유럽에 이주하여 어떻게 핍박 받고 고난 받으며 살아가는 지가 기술된다. 1권에서보다 한 층 더 고난과 핍박이 심해지고, 격리되고, 재산이 몰수 되고, 화형당하고, 살해되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유럽의 역사를 바꾸며 살아간다. 여기에서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 속에서 나오는 유대인들을 만난다.
유대인들은 이슬람 통치 아래에서는 그 어디나 고난과 핍박을 받았다. 그들이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으로 이주할 초기에 “유대인들이 악마를 섬기며 은밀하고 사악한 의식을 통해 악마와 교통한다는 이야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제2권 93쪽). 이때 영국에서는 “유대인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부활절에 먹는 빵 속에 그리스도의 대역(代役), 즉 젊은이를 죽여 그 피를 빵에 넣는다.”는 소문이 생겼는데, 이러한 소문이 유럽 전역에 반유대주의의 사상을 낳았다.” (106쪽). 이 미신은 계속해서 유대인을 괴롭혔다.
“지중해로부터 시작해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흑사병은 반유대주의라는 층을 더욱 두텁게 하였다. 인구의 1/4에서 1/2이 죽었다. 사람들이 이의 원인을 유대인에게 돌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반유대주의가 유대사회를 삼켰다.” (118쪽). “스페인의 알폰조는 반유대주의를 위한 이론가였다. 그는 유대교를 신봉하는 이단자를 찾아내어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157쪽). 스페인에서 1480년부터 8년 동안 유대인 8백 명이 화형을 당했다. 그 후 3만2천명이 화형을 당했다. 1492년에 스페인에서 유대인이 추방되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의 유대인 사회는 붕괴되었다. 중세 말부터 유럽인들은 그들을 올빼미, 금송아지, 전갈, 암퇘지라 불렀는데, 그들만이 모여 살도록 강제 거주 지역인 게토(Ghetto)를 만들었다. 게토가 처음 만들어 진 곳은 이탈리아의 베니스였다. 이 게토는 유럽과 동구에도 소련에도 있었다. 그들이 사는 곳에는 어디나 통치자 들이 게토를 만들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재림 때까지 방랑의 벌이 주어졌다는 이야기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1223년 이었다.” (154쪽). 이때부터 예수를 죽인 유대인은 그 죄로 핍박을 받아 떠돌아다니며 죽음을 당해도 된다는 이론아 생겼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프로테스탄티즘의 출현은 유대인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종교개혁을 통해 유대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격리는 종식을 고하게 되었고, 그들이 가장 증오했던 수도사들이 파멸됐다.” (171쪽). 루터는 유대교와 유대인을 공격했으나 칼빈은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종교 개혁으로 폴란드,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등의 동유럽에서 유대인 공동체가 회복돼 나갔다. 영국에서 크롬웰 시대에 유대인들은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저자는 유대인들을 유럽에 “자본주의의 씨앗을 만든 민족” 이라고 평가하는데 (258쪽), 유대인이 모여 사는 지역에는 어디나 그 지역 전체가 부를 축적했다. 미국이 부국이 된 것은 유대인의 힘이 컸다.
프랑스에서는 스페인 다음으로 반유대주의가 강했다. “프랑스 혁명에서 반유대적 기류가 강했다. 볼테르(Voltaire, 1698-1778)의 입장을 따르면서 부상하고 있었던 좌익세력들은 유대인들을 인류의 진보와 반(反) 계몽주의의 대적자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315쪽). 드레퓌스 사건으로 인해 반유대주의가 제도화되었다. 독일에서도 반유대주의가 늘어나 1882년에 최초의 국제적인 반유대주의 회의가 개최되었다. 당시의 유대인에 대한 평가: “삶에 있어 유대인은 죽은 사람이며, 토착민에 대해 유대인은 이방인이자 방랑자이며, 재산 소유에 대해 유대인은 거지이며, 가난한 자에 대해 유대인은 수탈자와 백만장자이며, 애국자에 대해 유대인은 나라 없는 백성이며, 모든 계층들에 있어 유대인은 미움 받는 경쟁자이다.”라고 했다. (494쪽). “러시아는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를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으로 내건 유일한 국가였다. 러시아의 차르 정권은 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다. 러시아에서 1881년부터 200만 명의 유대인이 미국으로 갔다. 동유럽의 유대인들도 미국으로 갔다. 1890년대에 유럽인의 반유대주가 절정을 이루었다.
“영국은 일찍부터 유대인들을 환영하고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유대인들을 도우려고 했다. 다른 많은 국가들이 벌였던 당혹스러운 인종차별을 대영제국이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인 로스차일드경 (Nathan Mayer Rothschild, 1840-1915) 덕택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군주(君主)이자 모든 영국인이 존경하는 영국인이었다.” (339쪽). 그는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을 친유대인으로 만들었다.
유대인 디스렐리(Benjamin Disraeli, 1804-1881)는 수상이 되었다. 유대인인 로이터(Paul Julius Reuter, 1816-18990)는 세계 최초의 통신사를 설립하였다. 유럽의 유대인들이 세례를 받고 개종하여 유럽사회로 진입한 결과다. 마르크스 (Karl Heinrith Marx, (1818-1883)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것을 끝까지 숨기고 살았다. 그러면서 반유대적인 삶을 살았다.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0)는 개종(改宗)자로 1820년대에 유럽에서 가장 널리 칭송받는 시인이 되었다. 그는 세례 받은 유대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유대인을 혹독하게 비난하고 그를 후원한 로스차일드가(家)까지 모욕한 패륜아였다. 성병이 척추에 감염되어 소파에 기댄 채 살았다. 그의 시는 독일 교과서에 실려 교재로 사용되었다. 나치는 그의 저술을 금지시켰다. 1941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그의 묘는 파헤쳐져 파괴되었다. 말년에 그는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갔다.” (395쪽). 그는 마르크스와 교제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이작 바세비스 싱어(Isaac Bashervis Singer), 안톤 루빈슈타인(Anton Rubinstein, 1829-1894), 스피노자(Benedict Spinoza, 1632-1677), 멘델스존(Mendelssohn Bartheldy Jacob Ludwig Felix, 1809-1847),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쇤베르크(Arnold Schenberg, 1874-1951),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 로시니(Rossini),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es), 박스트(Leon Bakst, 1866-1924), 샤갈( Marc Chjagal, 1887-1985), 럼브란트(Marc Rembrandt), 로이스달(Ruisdael),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에밀 졸라(Emile Zola)는 다 유대인들이다. 한때 프랑스에서 살았던 레닌(Vladmir Lenin, 1870-1924)도 유대인이다.
저자 폴 존슨은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를 “유대인 중에 가장 위대한 혁신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고 평가한다. 그는 프로이트를 다음과 같이 그린다. “프로이트는 거의 모든 형태의 ‘모던이즘’을 혐오했다. 그는 매일, 주간, 월별, 그리고 연도별로 엄격한 일정표를 정해 놓고 있었다.” (533쪽).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 다섯 명을 쥐고 흔들었고 아내도 종속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그의 처는 프로이트가 세면할 때 칫솔에 치약까지 발라주었다.” (536쪽). “한 사람의 자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프로이트는 유대교를 창시한 이가 아브라함이 아니라 위대한 법률 수여자인 모세라고 보았으며,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세웠던 모세 동상에 매혹되기도 했다. ‘1913년 9월 3일에 3주 동안 나는 홀로 그 모세 동상이 이해될 때까지 날마다 그 동상 앞에 서서 연구하고 치수를 재고 스케치했다’”. (538쪽). “그는 자신을 꿈꾸는 사람이자 선각자였던 요셉과 동일시했으며, 알렉산더 대왕이 자기 휘하의 참모 중에 꿈을 해석하는 자들을 가장 중히 여겼다는 것을 지적하곤 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하나의 착각으로 보았다.” (538쪽). “프로이트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다면,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입증할 수 없는 진리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545쪽). 그도 유대인이다.
유대인 헤르즐(Theodor Herzl, 1860-1904)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려는 운동을 정치적으로 주도했다. 독일 지성인은 당시 이렇게 유대인을 싫어했다. “사람이 기생충과 세균과는 협상을 하지 않을뿐더러 기생충과 세균은 교육에 순응 하지도 않는다. 유대인들은 가능한 한 신속하고도 완벽하게 박멸되어야 한다.”(492쪽). 헤르즐은 1896년에 ‘유대국가’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80회에 걸쳐 개정판을 내었고 18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로 인해 1895년 시온주의 (Zionism)가 시작됐다. 그가 뿌린 씨로 결국 이스라엘 국가가 1948년에 탄생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이 된 “데이비드 벤구리온( David Ben-Gurion, 1886-1973)은 폴란드에서 13세 때 헤이즐에 대해 들었다.”(515쪽). 시온주의는 유대교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그는 유대인들한테도 박대를 받았다. 헤르즐은 “44세에 죽었다. 젊은 나이로 건강을 잃었으며, 결혼 생활도 파국으로 끝났다. 가족에게 남긴 유산은 보잘 것 없었다. 그의 아내 줄리아는 그보다 볼과 5년을 더 살았고 그의 딸 폴린은 헤로인 중독자가 되어 1930년 약물과다로, 그의 아들 한스는 프로이트의 치료를 받던 중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또 다른 딸은 나치 치하에서 굶주려 죽었으며 그녀의 아들 슈테란 역시 1946년 자살함으로써 그의 가족은 완전히 사라졌다.” (510쪽). 헤르즐은 일생을 선한 일을 하다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런데 그의 가족은 왜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았을까? 그의 시온주의는 칭찬보다는 오히려 비난을 더 많이 받았고, 유대교에서는 그를 왕(王)사탄(Satan)이란 비난까지 했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사바타이 즈비 (Sabbatai Zevi, 1626-1676)이다. 그는 자칭 메시아였는데, 전 세계의 유대인들은 그가 정말 메시아인줄 알고 열광하였다. 영적 능력을 가진 천재 나탄(Abraham Nathan Ben Elisha, 1645-1680)이 즈비의 하나하나의 언행이 모두 메시아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해설까지 해서 유대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즈비가 끝내 메시아임을 증명하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보다도 더 비참하게 죽어 유대인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큰 상처도 주었다.
“나탄은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그래서 위험하기까지 한 유대인의 뛰어난 전형 가운데 하나였다. 현상들을 설명하는 그의 방식은 너무나도 유연해서 기존의 주장들을 뒤집는 새로운 사건이 발생해도 이를 대부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그는 현상들을 받아들임으로써 현상을 이해하는 탄탄한 능력과 확고부동한 확신 그리고 변화무쌍한 이론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후에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도 이와 유사한 능력을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30쪽). 이는 저자가 나탄의 능력을 찬양한 글이다. 한 인간을 메시아로 둔갑시켰으니 그의 언행과 필력이 대단했을 것이다,
유대인의 역사 제3권은 388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폴란드, 독일, 소련에서의의 유대인 학살과 미국에 이민한 유대인의 생활상과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1930년대 말에 전체 유대인의 수는 1천 8백 만 명이었다. 이때 폴란드에는 200만 명의 유대인이 있었다. 러시아에는 500만 명이상의 유대인이 있었다. 나치의 통치 아래에 있었던 유대인의 수는 약 8,861,800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5,993,900명, 또는67%를 학살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90%이상이 학살 되었다.
1942년, 1943년 그리고 1944년 몇 달 동안 일주일마다 나치들은 1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냉혹하게 죽였다. 수용소에서 독가스로 죽었고,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일을 시작한지 6주에서 3개월 안에 죽어갔다. 이때 유럽인들은 방조하거나 협조했고 저항하기도 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순서로 유대인을 학살했다. 무솔리니는 민족주의적인 사회주의자가 되어 이탈리아에 있는 1,000명의 유대인을 독일로 보내 죽게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유대인을 민가에 숨겨주는 이도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60,000명의 유대인 중 2,000명을 살해했다. 벨기에서는 65,000명 중 40,000명을 죽였다. 네덜란드에서는 140,000명 중 105,000명이 죽었다. 핀란드는 2,000명의 유대인을 나치에 넘겨주지 않았다. 덴마크는 5,000명의 유대인을 스웨덴으로 보내 거기서 처형되게했다. 헝가리에서는 21,747명이 희생되었고, 596,260명이 강제로 이송되었고, 116,500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30년대에 영국은 가장 약한 반유대주의를 보였다. 미국인들은 1942년에 일본인, 독일인, 유대인 순으로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로 이해되었다.” (제3권 187쪽). “왜 유대인들은 저항하지 않았을까?” (192쪽). “온전히 종교적이었던 유대인 집단들은 기만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기만에 빠져 있었다.”(193쪽). “유대인들은 악마가 인간의 모습을 취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195쪽).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수동성을 장려하는 경향을 지녔다. 하시림 계열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197쪽).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순교를 믿었다.”(198쪽).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합병되자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던 프로이트를 그의 친구들이 몸값을 치르고 석방시켜 영국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비엔나에 남겨졌던 그의 네 명의 누이들은 나치의 그물망에 걸리고 말았다. 다 독가스 실에서 죽었다. 2천 년에 걸친 반유대적인 증오, 즉 이방인들이나 기독교와 세속인들, 성직자들, 평민들, 그리고 대학에서의 증오는 히틀러에 의해 괴물로 합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파괴의 힘을 발휘했다.”(205쪽).
“고난을 통한 구속(Redemption)은 유대인의 역사에서 오래고도 강력한 역동성을 부여해주었다. 유대인들은 가스실로 끌려가면서도 자신들의 신앙 고백을 노래했다. 그 형벌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자신들을 선택했다는 일종의 증거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며, 히틀러나 나치의 친위대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대리인 일 뿐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221쪽).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은 위의 존슨의 기술(記述)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어서 덧붙인다.
유대인들이 죽어 가는 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攝理)라, 그분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의 뜻에 따라 순교한다는 의미이다. 죽는 것도 하나님의 선택에 따른 축복이란 것이다. 악마도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被造物)이라 악마인 히틀러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그들을 가스실로 보낸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그들을 죽게 하는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소를 잡을 때 큰 칼이 필요하듯이, 히틀러는 유대인을 죽이기 위한 하나의 큰 칼 일 뿐이란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교리는 신은 오직 하나뿐이다. 악마는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를 가진 악신이 아니다. 악마도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악마가 악행을 할 때는 먼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교리 때문에 성경의 욥기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 책의 저자 존슨이 앞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그 욥기를 가지고는 유대인의 그 끔찍한 악행을 만족하게 해설할 수 없다.
저자는 “희생자들인 유대인들은 희생자들을 위한 창조물이었다.”고 쓰고 있다.”(104쪽). 이러한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 뜻도 쉽게 알 수 있는 견해도 아니다. 파리도 600만 마리를 죽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히틀러는 왜,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런 악행을 했을까? 존슨의 말을 더 들어보자. ”홀로코스트(Holocaust)란 유대인의 대학살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존속(尊屬) 살인이었다.”(117쪽). “중세의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들을 인간이하의 악마나 일종의 동물로 보았던 것처럼 나치의 극단주의자들은 히틀러의 사이비과학을 흡수하여 유대인들을 세균이나 특히 위험한 종류의 기생충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알프레드 로젠버그(Alfred Rosenberg, 1892-1946)는 유대인 학살을 위한 이론가가 되었고 대학들이 나치를 후원했다.”(122쪽).
“1933년 히틀러가 총통이 되었다. 그가 대학살 계획을 세웠다. 그의 반유대주의 노선이 감정적인 혐오감과 이성이 결합된 이중성을 보였다. 혈통의 1/4이 유대인이면 독일인이고, 절반이 유대인이면 유대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151쪽). “아리아 인종과 ‘성적인 관계’를 가진 유대인들은 자동적으로 집단수용소로 보내졌으며 아라아인 또한 3개월의 재교육을 받아야 했다.”(153쪽). 히틀러는 전쟁의 원인을 전 세계에 있는 유대인으로 귀속(歸屬)시킴으로 ‘민족말살’의 법위를 확대시킬 수 있었다.”(155쪽). ”히틀러는 유럽의 유대인 사회가 지닌 거대한 재산을 강탈하려고 했고, 이를 위해서는 폴란드와 러시아를 상대로한 전쟁을 일으켜야 했다.”(155쪽).
러시아에는 1917년 볼셰비키 공산 혁명전에 “약 500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163쪽). 이중 200만 명은 미국으로 떠났다, 아직도 거기에는 150만 명의 유대인이 구출되지 못하고 있다. 혁명 즉시 50만 명이 발칸반도 쪽으로 도망갔다. 그들은 차르 통치에서도 혹독한 탄압을 받았는데 혁명은 더 큰 재앙을 그들에게 가져다주었다. 혁명을 한 트로츠키와 레닌이 스스로 유대인이기를 밝히지 않는 유대인이었는데도 두 사람은 그들을 돕기는커녕 탄압과 살해에 앞장섰다.
러시아에는 유대인들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특성을 부정하는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이 나타나 유대인을 혐오하고 그들로부터 결별하려고 하였다. 레닌(Lenin) 역시 같은 이유로 유대인들의 적대자가 되었다. 레닌은 시온주의를 반대했다. 노골적으로 엄청난 규모로 유대인들을 혁명적인 폭력 세력으로 몰아세운 것은 바로 차르정권의 반유대주의였다.
“러시아의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점을 증오했고 그것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혁명을 위해 싸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혁명의 성공이 인류의 전반적인 혁명뿐만 아니라 그들이 유대인이었다는 멍에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71쪽). 유대인 사회주의자인 “트로츠키(Leon Trotsky, 1879-1940)는 유대인에게 무관심했다. 이는 가족들에게까지도 해당되어 혁명 중에 아버지가 모든 것을 잃고 장질부사로 죽어 갈 때에도 관심을 두려하지 않았다. 러시아 혁명을 유대인의 작품으로 생각했던 책임은 누구보다도 그에게 있었다.”(74쪽).
유대인이면서도 스스로 유대인이란 것을 숨긴 로자 룩셈브르크(Luxemburg, 1871-1919)는 “유대인을 계급 속에 흡수하여 유대인들 모두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직어 또 하나의 혐의를 받게 했다.” (67쪽). 이는 러시아의 반유대주의에 타당성을 더하게 했다. “볼셰비키 정부의 95% 이상이 유대인이며, 정부의 55명 가운데 여섯 명이 러시아인, 한 명은 독일인 그리고 나머지 모두가 유대인이었다.”(87쪽). 이렇게 되자“프랑스에서는 유대인을 재력가로 보다가 이제는 정부 전복 세력으로 보았다.” (89쪽). 반러시아 국가들은 러시아 혁명을 유대인들이 주도한 것으로 간주했다. “소련을 타도하려 했던 백러시아군은 모든 유대인을 적으로 취급했다.” (74쪽).
“스탈린이 권력을 잡자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과 학대가 증가되어 1920년대 말에는 유대인의 활동이 와해되거나 무기력하게 되었다. 트르츠키는 스탈린의 반유대 정책에 분노하고 경악했다.”(79쪽). “스탈린은 그의 17세 된 딸이 유대인 극작가와 사랑에 빠지자 그를 추방해 버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국 그레고리 모로조브라는 유대인과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스탈린은 그가 군복무를 회피했다며 그를 고소해버렸다. 사람들이 그에게 총을 겨누는 동안 스탈린은 집밖에 있었다. 스탈린의 큰아들 야코브 역시 유대인 아내를 맞이했는데,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스탈린은 그녀가 그를 배신했다고 주장하였다.” (326).
“소련의 유대인들은 중세에서와 같이 국가의 지배를 받은 국가의 자산이었다.” (325쪽). “소련의 반유대주의가 멈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그랬다. 스탈린은 비유대적인 유대인을 이용하여 유대인을 제거하거나 압제 했다. 숱한 유대인들이 살해되었다. 체코슬라바키아에서는 13명의 주요 공산주의자 들 중 11명이 유대인들이었는데, 스탈린은이들을 트로츠끼-티토주의-시온주의자라는 음모로 고발하여 사형에 처해졌다.”(328쪽). “1977년-1978년에는 단 한 명의 유대인도 모스크바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330쪽). “1972년부터 10년간 25만 명의 유대인들이 소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330쪽).
“1930년대 전체 유대인의 수는 1천 8백만 명에 가까웠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도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에서 죽은 이들의 수를 회복하지 못했다. 총1천 3백 50만 명이 유대인 가운데 3백50만 명이 이스라엘에 거주했다. 단연 최대의 유대인 사회는 미국에 있었고(575만), 이어 캐나대(31만), 아르헨티나(25만), 브라질(13만), 멕시코(4만), 소련(175만), 헝가리(7만5천), 루마니아(3만), 프랑스(67만), 영국(36만), 서독(4만2천), 벨기에(4만1천), 이탈리아(3만5천), 네덜란드(2만5천), 스위스(2만), 남아프리카(10만), 모로코(1만7천), 에티오피아(5천), 페르시아(2만1천), 터키(1천)에 있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는 7만5천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홍콩에는 1천명, 싱가포르에는 400명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309-311쪽).
이 책 3권에는 계속해서 미국으로 간 유대인들이 어떻게 미국에 정착해서 미국의 주류 집단으로 발전하였는지에 관해 상세한 과정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창설 과정도 기술되고, 히틀러에 부역한 자들에 대한 재판과정도 서술된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글을 읽고 느낀 점도 최소한으로 줄인다.
600만 명이 죽은 홀로캐스트는 개인 히틀러가 저지른 악행이 아니고 오랜 역사를 통해 내려온 반유대주의의 산물이란 것을 알았다. 유대민족의 고난과 핍박을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교회에서는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믿은 종교가 아니라고 가르치는데, (물론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 다는 교회도 있다.) 이러한 신학이 나온 배경을 이 책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유대인들이 위대한 민족이란 것을 나에게 각인시켜주었다.
서양 사람들은 한민족을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평가한다는데, 우리들이 왜 그런 평가를 듣는지,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목사가 쓴 책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유대민족이 살지 않는 나라는 있어도 한민족이 살지 않는 나라가 없단다.
각 종교를 서로 비교해서 우열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유일신 신학이 범신론(汎神論)이나 다신론(多神論)의 그것보다는 이성(理性)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저자는 역사의 주관자는 신이지 인간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 같다, 그러나 누가 이것을 자신 있게 증거할 수 있겠는가? 좋은 책이다. 기독교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