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하면, 두 대통령을 풀고, 이재용을 일터로 보내라.
자서전, '문제인의 운명'을 읽고 (독후감)
2021년 7월 21일
김일중
(조갑제 회원토론방에 쓴 글)
문재인은 자서전에서 젊었을 때의 그를 선한 사람으로 그렸다. 그는 이렇게 쓴다. “그 사건을 처리하면서 사람을 처벌하는 일이 내 성격에 맞지 않다고 느꼈다. 사람을 처벌한다는 일은 늘 부담스럽고 마음이 불편했다. 식품위생법 위반사건 같은 것을 처리할 때도 소행으로 보면 처벌해야 마땅한 일인데도 막상 사정을 살펴보면 장애인이라거나 생계형 범죄라는 등의 딱한 사정 때문에 단호한 처벌을 결정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내 무른 성격 때문에 검사는 안 맞겠다고 생각했다.” (문제인의 자서전 192쪽에서 인용).
위의 그 사건이란 다음의 이야기를 말한다. 한 고아로 자란 가난한 젊은이가 서울 상계동의 한 벽돌공장에서 트럭을 운전했다. 한 부부가 그 공장에 함께 인부로 일했다. 그 젊은 한 쌍은 아기를 맡길 데가 없어서 벽돌더미 속에 놓아두고 어머니가 때때로 가서 젖을 주거나 돌봤다. 어느 날 앞의 운전사가 벽돌을 싣고 떠날 때, 아기가 바퀴에 치어 죽었다. 이 젖먹이가 바퀴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기가 벽돌 사이에서 기어 나와 어른들이 트럭에 벽돌을 싣느라 미처 못 보는 동안 트럭 밑으로 들어간 것으로 짐작됐다. 운전사는 구속됐다. 영장에는 차를 출발시켰을 때, 차량 밑을 살펴봐야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돼있었다. 검사 직무대리로 임명된 문재인은 이 교통사고를 처리해야했다.
그는 이 사건 처리를 놓고 고심했다. 운전기사도 딱했고 젊은 부부도 가엾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벽돌 공장 사장이 운전사를 대신해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주고 합의하게 했다. 이 합의를 이용해서 문재인은 그 당시의 관행을 깨고 상급자들의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담당검사, 차장검사, 지청장을 설득해서 피고가 벌금도 가장 적게 내게 했다. 그리고 그를 석방했다. 앞의 글에서 문재인은 “내 무른 성격 때문에”라는 구(句)를 사용 한다. 무르다는 의지나 힘이 여리고 약하다는 뜻이다. 젊었을 때의 문재인은 위의 업무처리에서 처럼 선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을 돕는 것을 기뻐한 사람이었다. 죄지은 사람을 처벌하고 교도소에 보내기를 싫어한 사람이었다.
변호사란 소송 당사자의 의뢰 또는 법원의 선임에 의하여 소송 사무나 기타 일반 법률 사무를 행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변호사는 쉽게 말하면 법에 관한 일에서 남을 돕는 사람이다. 문제인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돈에만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면 변호사는 좋은 직업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다행히 변호사로 성공한 편이다. 돈도 벌면서 인권 번호사라는 좋은 평도 들었다.” (442쪽).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그에게는 변호사는 최적의 직업이었다. 그는 타고난 조력자였다. 우리말처럼 사용되는 영어로 helper였다, 착하고 무른 helper였다. 그가 자신이 쓴 책에 그려진 자기는 검찰이 만든 관제 간첩들을 교도소에서 꺼내온 조력자(助力者)였다, 진짜 빨갱이요, 진짜 간첩이라도 그의 교도소 생활을 짧게 하려고 애쓴 도움이었다. ‘권위주의 시대’ 때 많은 시국사범 들을 구한 인권변호사였다.
문제인은 수재이다. 사법시험을 한 번에 도전하여 합격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다음 글은 문재인의 학력에 관한 위키백과에 기술된 내용이다. 내가 긴 글 중 일부 첨삭한 곳도 있다. “문재인은 경남중학교에 입학했고, 경남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다. 경희대 총장이었던 조영식이 문재인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입학을 권유하였고, 그는 그 권유를 받아들여 1972년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고 알려졌으나, 이런 일화의 사실 관계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혹도 존재한다.” 의혹도 존재한다는 말에 주목하라. 위 기술(記述)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자서전에는 고교 수석입학이란 말이나, 경희대 ‘4년 전액 장학금’이란 말은 없다. 그 책에는 이런 글이 보인다. 그는 특전사령부에서 훈련을 받았을 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개근상 말고는 상을 받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정학을 당하기도 하고 대학에서는 급기야 제적되고 구속되었다.” (157쪽).
그의 대학 입학에 관해서는 이렇게 간단히 밝힌다. “재수 끝에 당시 대학 후기였던 경희대 법대에 합격했다.” (129쪽). “중고등학교 때 내 별명은 문제아였다. 술 담배하다 중고교 때 유기 정학도 받았다.” “초등학교 때, 나는 눈에 뜨지 않는 아이였다. 키가 작고 몸도 약했다. 아주 내성적이어서 선생님의 관심을 받아본 적도 없고 수업 시간 뒤에 선생님을 따로 만난 기억이 없다.” (120쪽). 그의 초등학교 성적에 대해서는 “5학년 때까지 수(秀)도 드물고 대부분 우(優)나 미(美)나 양(良)도 있었다.” (120쪽). 진솔한 이야기 같다. 그는 책에서 경남중고교 때의 성적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다.
그는 1979년에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고, 1980년에 2차 시험에 합격한다. “어쨌든 나의 사법고시 합격은 여러모로 운이 따랐다. 2차 시험에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문제들이 출제됐다. 특히 마지막 두 세 달의 집중 공부가 아무 소용없는 뜻밖의 문제가 출제 됐다. 나는 헌법과목에서 거의 최고 득점을 했다. 그것으로 나머지 과목의 낮은 점수를 만회해 간신이 합격할 수 있었다.” (185쪽).
그는 판사를 원했으나 대학 때의 시위 주도로 판사로 임용되지 못한 것은 맞으나, 그것은 권력자의 외압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내가 판사로 임용되지 않은 것이 외압 때문은 아니었다. 법원 특히 당시 대법원의 시대에 뒤떨어진 의식이 스스로 낙후된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193쪽).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때, 그의 성적은 2등이었다. 동기생은 141명. 학교에서는 개근상 말고는 상을 받은 적이 없는 문재인은 “수료식에서 법무부장관 상”을 받았다. (25꼭).
문재인은 이처럼 젊었을 때 선하고 착하였다. 무른 사람이었으나 남을 돕기를 기뻐한 사람이었다. 그는 특히 우수한,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그는 정치판에 들어온 뒤부터 두 대통령을 교도소에 넣는 등 악한 짓을 많이 했다. 그의 통치 행위들은 인간의 본성에 역행하는 것 들이었다. 사람들을 돕기를 커녕 그 반대였다.
자서전을 거짓말로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한다. 그의 자서전 (제목 : 문재인의 운명, 2017년 5월 17일에 (주) 북팔이 펴냄)에서 문재인이 그린 그의 자화상은 어진 사람이었다. 남을 돕는 사람이었다. 그가 진정 그런 인물이었다면, 이제라도 두 대통령을 감옥에서 풀고, 이재용을 일터로 보내여야 한다. 탈원전 정책도 서둘러 취소해야 한다. 머리가 좋고 재주 있는 이는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