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럼

습관적인 욕설과 저주, 나에게 불행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김일중 2010. 2. 17. 18:52

습관적인 욕설과 저주,  나에게 불행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2010년2월17일 김일중 (인터넷에 올린 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면,  습관적으로 욕설을 퍼붓고(습관적으로 란 단어에 주목해주세요), 비판하고, 조롱하고, 저주하는 글 들이 많습니다. 이런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이 글을 씁니다.

 

이 명박 대통령께서 쓰신 “신화는 없다” (1995년에 금영사에서 펴냄)는 책 (119-120쪽)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그대로 옮겨봅니다. “정 사장 (필자 주: 정주영 회장을 의미) 에게는 많은 부하 직원들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 ‘이명박’ 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그가 가장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 중의 하나가 되었다. 본사에서나 현장에서나 무슨 일이 잘 못 되면, 으레 ”이명박한테 전화 걸어“하고 무조건 나를 찾고 보는 습관 (습관이란 단어에 주목해주세요)이 되어 버렸다. 정 사장은 가끔 현장 소장이나 다른 간부들에게 전화를 한다는 것이 습관적으로 (습관적이란 단어에 주목해주세요) 내 전화번호를 돌릴 때가 있었다. 받아보면 밑도 끝도 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을 혼자 속사포처럼 쏟아놓았다.

 

“사장님 저 이 명박입니다”

“뭐? 누구라고?”

“중기 사업소 관리과장입니다”

“자네가 왜 거기에 있어?

“여긴 중기 사업소입니다. 사장님께서 전화를 걸어 오셨습니다”

“응 그래 끊어”

그러나 또 얼마 있으면 비슷한 전화가 걸려오는 것이었다. 이 처럼 밤 낮 없이 전화를 거는 형편이었으니, 부인 변 중석 여사도 내 이름을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

 

위 글 뒤에는  변 여사가 이 명박과장에게 정 회장 몰래 인사 청탁을 하는데 거절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 회장이 얼마나 이 명박 과장을 신뢰하고 믿었는가를 잘 나타내주는 글인데, 정주영 회장은 (정 회장의 현재 의식은) 분명 이 명박과장 이외의 다른 사람과 통화하려고 했는데, 또 다른 정 주영회장 (정주영 회장의 잠재 의식은)은 이를 방해해서 이 명박 과장과 통화하도록 하였습니다.

 

최근에 조선일보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 용기 목사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의사가 조 목사의   내시경 위 검사를 하기위해 마취를 했습니다. 마취 상태에서 조 목사는 깨어 있을 때와 똑 같이 설교를 했습니다. 마취로 조 목사의 현재 의식은 자고 있는데도, 조 목사의 잠재의식은 설교를 한 것입니다. 조 목사가 감동적인 설교를 위해 습관적으로 (습관적이란 단어에 주목해주세요) 얼마나 노력하고 기도했는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기사입니다. 조 목사님도 인터뷰에서 성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설교를 위해 많이 애썼다고 술회했습니다.

 

50대의 한 부인이 눈이 감기는 병에 걸렸습니다. 눈꺼풀이 스스로 감겨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병원을 전전했으나 병의 원인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기 치료사에게 갔습니다. 기 치료사가 이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누구 미워하는 분 없습니까? ”예, 있습니다. 동서 하나가 무척 미워서 늘 그년, 꼴도 보기 싫다고 말하면서 미워했습니다” “꼴도 보기 싫다고 소리 내서 미워하니 눈이 감겼어요”. 어떤 기 치료사는 이처럼 초능력이 있어서 의사가 모르는 병의 원인을 안다고 합니다.  습관적으로 (습관적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한 꼴도 보기 싫다는 욕이 눈을 뜨지 못하는 병을 가져온 것입니다.

 

50대 남성이 실직을 했습니다. 집안 형편은 아이들 교육도 안 끝나고, 돈 버는 사람하나 없고, 한 마디로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실직 후 세 달 뒤부터는 이 남성이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실명상태에 까지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병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무당한테도 가고 기 치료사에게도 갔습니다.  결국 기 치료사가 치유했습니다. 이 남성은 집인 형편이 하도 절망적이라서 “앞이 안 보인다”고 늘 장탄식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습관적인 (습관적인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장탄식이 병을 가져온 것입니다.

 

위 눈 감기는 병과 실명할 번한 실직자의 이야기는 시인이고, 일생을 우리말 뿌리 찾기에 보낸 전 경희대학교 서 정범 박사가 지은 “한국무속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우리말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의 유명한 무당과 박수를 3,000명 만나보고 이에 대한 책을 여섯 권 썼습니다. 저는 간접적으로 지능적으로 책을 선전하는 사람아 아닙니다.

 

저는 보지 못했으나 “낮은 데로 임 하옵소서”란 기독교 영화가 있었습니다. 흥행에도 성공하고 아주 감동적인 영화였다고 합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이 장님 목사였다고 하는데, 눈이 건강한  주연 배우가 영화 촬영을 마치고 실명해버렸습니다. 왜 실명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주연 배우는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촬영기간 동안 얼마나 말과 행동으로 장님 행세를 했겠습니까? 오랜 기간 동안의 습관적인 (습관적인 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장님행세가 실제 장님이 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영화의 감독은 자기 친 아우를 기용해서 영화를 촬영했는데 아우가 장님이 된 것입니다. 그 영화감독의 인터뷰기사를 제가 읽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정주영 회장의 습관적인 이명박 과장에게 전화 걸기와 조 용기 목사님의 습관적인 전력을 다한 설교는 큰 업적을 남기었습니다.  습관적인 꼴도 보기 싫다는 욕설과 눈앞이 안 보인다는 장탄식은 병을 가져왔습니다. 영화 출연했다 장님이 된 이야기는 우리들의 습관적인 말과 행동은 반드시 결과를 수반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남을 욕하고, 비웃고, 조롱하고, 헐뜯고, 저주하시는 분들, 앞으로 계속 악한 일을 하시겠습니까? 

 

“ 애들아, 네가 그 누구에게 선물을 가지고 갔다 하자. 그런데 그 사람이 네 선물을 받지 아니하면 어떻게 하냐?”

“ 그 선물을 가지고 그 냥 돌아 와야 합니다”

“ 남을 욕하고 비난하고 헐뜯고 저주하는 것도 마찬 가지다. 비난 받는 사람, 욕을 먹는 사람, 저주 받는 사람이 그 것을 안 받으면 네가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 그 욕설과 비난과 저주는 너의 것이 된다” (불경, 오래 전에 읽은 글이라 제가 임의로 의미전달을 위해 각색한 것입니다)

 

이는 교과서에서 우리가 4대 성인의 하나라고  배우는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들과의 대화입니다. 욕을 얻어먹을 만한 사람에게는 욕을 해도 좋은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터무니없는 비난은 분명 악입니다. 예수님은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 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남에게 신나게 퍼부은 저주가 나에게 그대로 돌아온다면 저주를 안 하는 것이 좋지 않을 가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안 든다고 저한테 욕하지 마세요. 다 돌려보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