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고통의 문제’를 읽고 (독후감)

김일중 2012. 5. 31. 14:46

 

‘고통의 문제’를 읽고 (독후감)

 2012년 5월 31일

김 일중

 

‘고통의 문제’ (The Problem of Pain)를 읽었다. 씨 에스 루이스(C. S. Lewis)가 지었고, 번역은 이종태가 했으며, 홍성사가 2005년에 펴낸 책을 읽었다. 번역본은 모두 265쪽의 책이다. 책의 내용이 좋아서 이 책으로 영어 공부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어 원본도 읽었다. 종로 1가에 있는 영풍 문고에서 원본을 구입. 영어 원본은 42,000 단어로 된 책, 모두 159쪽이다. 

 

이종태는 성실하고 충실하게 번역했다.  서초 국립도서관에 가서 김준곤이 번역한 ‘고통의 문제’와 김남식이 번역한 것도 읽었다. 다 읽지는 않고 조금 읽었다. 이 종태의 번역본에 의미 전달이 잘 안 되는  곳을 두 사람은 어떻게 번역했나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의 번역서를 보고, 이종태의 번역이 뛰어나고, 번역이 참 어려운 작업이란 것을 실감했다.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한 글에 따르면, 이종태는 이 책을 번역하는데, 3개월이 걸렸다. 홍성사는 이 번역 초고를 여섯 번이나 교정했다. 이종태가 이 ‘고통의 문제’ 영어 원본을 3개월을 들여 번역했다면, 하루에 2페이지를 번역한 것이다. 그가 하루에 몇 시간을 소비하여 번역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루 동안 2 페이지를 번역했다는 것은 바른 번역이 어려운 일이란 의미일 것이다. 그는 장경철 서울여대 교수와 함께 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를 번역해서 ‘이 해의 번역 상’을 수상했다. 

 

번역 이야기로 말이 길어졌다. 영어 공부를 하고서도 원서하나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실망하고 있는 분들 (나도 그 중의 하나)을 위로하기 위함이고,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본의 대부분도 정확하게 번역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말을 하기위한 것이며, 영어 공부를 하는 이에게, 이 ‘고통의 문제’의 원본과 번역본은 아주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나는 어떤 책을 읽을 때는 책의 제목, 앞뒤 표지에 쓰 여진 글들, 머리말을 읽어보며, 작가의 약력을 읽어본다. 책의 대강의 내용을 알기위해서이다. 편집이 잘 된 양서들은 이렇게 하면, 그 책의 대강의 내용이 파악된다.

 

번역본 ‘고통의 문제’에는 앞뒤 표지에  “ The Problem of Pain, 고통의 문제, C. S. Lewis, 홍성사란 출판사 이름들만  쓰여 있다. 원본 ‘고통의 문제’에는 앞표지에 C. S. Lewis, The Problem of Pain가 있다.  

 

원본의 뒤의 표지에는 Why we must  suffer? 등의 긴 문장들이 있고, 저자를 칭찬한 글과 그에 관한 약력이 있다. 이를 번역 해본다.  “왜 우리는 괴롭고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 하느님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그가 만든 그의 피조물인 인간들이 고해(苦海) 바다 속에서 살도록 왜 그냥 내버려 두나?”  "그리고, 인간들은 고통을 통해서 영적인 성장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짐승들은 고통을 통해서 영적인 성장이 없는데도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는 이러한 풀기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의 넓고 풍부한 열정과 통찰력으로 C. S. Lews는 이러한 난해하고도 중요한 문제에 해답을 주고, 인간의 본성을 정말로 알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그의 소망과 지혜를 그들과 함께 나눈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또 다음과 같이 저자가 소개되어 있다: 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20세기의 지적 거장들 중의 한 사람이고,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그가 산 시대의 기독교 작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그는 1954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의 영문학 과 특별연구원 및 교수였다. 그는 그 해에 만장일치로 캠브리지 대학교의 중세 영문학과 학장으로 선출 되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는 문학 비평, 아동 문학, 공상 문학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 신학 분야에 큰 공헌을 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는 30권 넘는 책을 저술했고, 라디오 강연에서 엄청난 청취자를 확보했다. 그의 저술은 매년 수많은 새로운 독자를 끌었다. 그의 걸출하고 인기 있는 소양과 지식 등은 그의 책, The Chronicles of Narnia, Out of the Silent Planer, The Four Loves, The Screwtape Letters, and Mere Christianity들에 기술되어 있다. 

 

Time사는 루이스를 표지 인물로 다루면서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기로 칭찬했다. 그가 BBC 방송에서 ‘순전한 기독교’를 강연할 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강연을 들어서 세상이 조용했다. 그가 BBC 방송에서 강연할 때는 2차 대전 그 당시 처칠 수상보다도 더 많은 청취자가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라디오 앞에 모였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분 들은 ‘고통의 문제’의 저자, 루이스는 어떤 인물이고,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그 윤곽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양서의 경우, 어떤 책의 앞뒤 표지에 기술된 글을 읽으면, 저자와 책의 개략적인 내용이 파악 된다.

 

루이스는, 이 책의  서문에서 “ 이 책을 쓴 유일한 목적은 고통이 야기하는 지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번역본 12쪽) 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지? 전능한 능력으로 모든 고통을 없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혹시 하나님이 무능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이 말도 헛소리 아닌 가에 대한 답변서가 바로 ‘고통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고통을 준다고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저자 루이스의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은 선하다.  하나님은 전능하다. 그러나 하나님도 못하는 일이 있다. 말이 안 되는 일은 하나님도 못한다. 인간이 타락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를 악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고통 없는 세상이 될 수 없다.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고통은 인간을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는 수단이다. 즉, 고통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한 방편이다. 고통은 구원의 도구 일 뿐이다.

 

루이스는 서론, 하나님의 전능, 하나님의 선함, 인간의 악함, 인간의 타락, 인간의 고통 I, 인간의 고통 II 등에 장을 정하고 위에 언급한 것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이다.  루이스도 이러한 사실을 (1장부터 7장까지 나는) “예부터 내려오던 정통교리들을 표현만 바꾸어서 되풀이 했다.” (번역본 13쪽)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지옥, 동물의 고통, 천국에 대해서도 장을 정하고, 다루고 있는데, 이 3장에서는 그의 말과 같이 “추론적인 성격”을 띠면서 논리적으로 그의 견해를 피력 하는데, 이는 천국과 지옥의 존재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 그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도덕적 기준조차 평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깔아뭉개려는 사람들에 대한 반격이다. 인간은 평등 하다고 하면서 누구는 천국에 들어가고 누구는 지옥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 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격이다. 루이스는 하나님이 악인을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고 그가 지옥을 선택한다고 주장 한다. 하나님과의 대적에서 승리한 자들이 스스로 선택한 곳이 지옥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기독교의 인간의 고통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을 더 잘 이해했다. 종교 전반에 관한 지식도 늘었다. 고등 종교의 기원, 특히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루이스의 주장과 설명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것이다. 기독교가 타 고등 종교와 어떻게 다른가를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여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하나님이 못 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 전능하다해도, 인간 모두에게 함께 선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기도로서도 바뀌지 않는 저 냉혹한 자연법칙이 작용하지 않는 환경을 하나님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준 자유의지를 악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악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인간의 능력과 노력으로는 이 지구상에 낙원을 건설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연주의자, 계몽주의자, 유물론자들의 유토피아 사상이 이룰 수 없는 허구라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루이스는 인간이 하나님님이 창조한 그대로 선하게 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을 모두 하나님께 양도하지 않는 한, 고통이 우리를 따라다닌 다고 하는데,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려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하고, 고통이 올 때는 그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라고 생각하고 기쁘고 즐겁게 그것을 극복해야 한 다는 것을 알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