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럼

탄핵극(彈劾劇) 1막은 끝났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김일중 2016. 12. 10. 05:23

탄핵극(彈劾劇) 1막은 끝났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2016년 12월 10일, 김 일 중 씀

                                                                                        (조갑제 닷컴 회원토론방에 쓴 글)

 

박대통령 탄핵극(彈劾劇) 1 막이 끝났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1616년)는 “세계는 하나의 무대요, 모든 남녀는 배우일 뿐” 이라고 말했듯이, 이 탄핵극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의리(義理)를 지킨 이도 있었다. 배신자(背信者)도 있었다. 기뻐한 자도 있었다. 슬퍼한 자도 있었다. 물론 덤덤한 자도 있었다.

 

이 탄핵극의 극본(劇本)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연출(演出)은 누가 한 것일까? 이 극본은 박대통령이 태어나기 천 년 전에 만들어 진 것일까? 후에 만들어 진 것일까? 전에 만들어졌다면 인간들이 이 극본의 줄거리를 고치려고 애써도 소용없는 일이었을까? 이제 1막이 막 끝난 이 탄핵극의 2막은 어떻게 될까? 이 극의 마지막은 어떻게 끝날까?

 

나는 고등학교 때 세계사 책에서 송(宋)나라 때의 시인인 소강절(邵康節 1011년~1077년)을 만났다. 그는 소요부(邵堯夫)라고도하고 소옹(邵雍)이라고도 한다. 중국 송(宋)나라의 사상가이다. 철학자이다. 성리학의 이상주의 학파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수(數)에 대한 그의 생각은 18세기 유럽의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2진법(進法)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유교(儒敎)의 경전이며 점치는 데에도 이용되는 역경 (易經)을 공부했다. 그는 모든 존재하는 것의 본원에는 통일성이 존재하며 그것은 소수의 뛰어난 사람만이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주의 통일성(統一性) 밑바닥에 깔려 있는 원리는 우주(宇宙)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성리학파 이상론(理想論)의 기본이 되었다.

 

이 철학자 소절강이 주역을 공부한 때문인지 때어날 때부터 무기(巫氣)가 있어서인지 미래 예측을 잘 했다. 쉽게 말하면 점을 잘 쳤다. 무기가 특출하면 무속인(巫俗人)이 되면 영험(靈驗)한 무속인이 된다. 무속인이 안되고 일반이 되어도 무기가 있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다. 무당을 대접해서 부른 이름이 무속인이다.

 

이 철학자 소절강이 죽을 때 자손들에게 유물을 한 개 남기고 죽었다. 유물(遺物)이란 것이 별거 아니고 상자(箱子) 한 개를 천으로 싸고 싸서 아무도 개봉(開封) 못하게 한 것이었다. “이 상자를 절대 너희들이 열지 마라. 때가 되면 이 상자를 열자가 나타날 것이다. 절대로 열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고 그는 죽었다.

세월이 흘러갔다. 200년이 자나갔다. 300년이 지나갔다. 누구의 말처럼 세월이 유수(流水)같이 흘러갔다. 어느 때 소강절 자손 하나가 살인(殺人)죄를 지었다. 살인죄를 지어서 그 자손도 사형(死刑) 선고(言渡)를 받았다. 그 자손이 이제 죽게 되었다. 죽는 길 이외는 다른 길은 없었다.

 

판관(判官)이 그 사형수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의 자손이냐?” “예, 저는 소절강 자손입니다.” 그 판관은 깜짝 놀랐다, 그 유명하고 존경(尊敬)받는 소절강 자손이 살인죄를 짓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판관은 물었다. “그 소옹(邵雍, 소절강을 의미)께서 너희들에게 남긴 가보(家寶)는 없느냐?” “예, 있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상자 하나가 있습니다.” “내가 너를 잠시 풀어 준다. 그 상자를 너희 집어서 가져 오너라.” 그 판관이 한 말이다.

 

그 자손은 집으로 갔다. 그 상자를 가지고 왔다. 대청마루에서 그 상자를 가지고 오는 것을 본 그 판관(判官)은 그 유명하고 존경받은 소절강 선생이 손수 만든 상자를 그가 볼 수 있다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영광과 황공(惶恐)함과 가슴 벅찬 기쁨 때문에 그 상자를 대청마루에서 뛰어나와 마당에서 그 상자를 받았다.

 

그 판관이 대청마루에서 마당으로 뛰어나오자마자 그가 앉아 있던 집의 대둘 보가 부러지고 집이 폭삭 주저앉았다. 그 시각(時刻)에 그가 거기 앉아 있었으면 그는 죽었다. 그 판관이 그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 안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내가 너를 살려주니, 너도 내 자손(子孫)을 살려주라” 고. 이것을 본 그 판관이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위 이야기는 탄허 스님을 인터뷰한 기사에서 인용한 것이다.)

 

불타(佛陀)는 운명은 없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위 이야기는 인생의 큰 줄거리는 미리 정해져 있음을 암시(暗示)한다. 박대통령의 임기를 끝까지 마치기를 바라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돌아가는 것을 구경만 해야 할까?

 

우리는 불타(佛陀)의 말을 믿어야 할까? 소강절의 암시를 믿어야 할까? 불타는 운명이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운명이 있다면 우리의 노력은 헛된 것 아니냐? 소절강의 암시를 믿고 그냥 구경만 해야 할까? 아니다. 우리 박대통령을 위해서 선한 싸움을 하자. 자유(自由)민주주의(民主主義) 와 시장(市長) 경제를 옹호(擁護)하기 위해서 애써 싸우자. 힘써 싸우자. 아직도 희망은 있다. 절망(絶望)할 때는 더욱 아니다. 소절강의 자손도 사형언도를 받고도 살아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