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럼

광화문 보수집회(12월10일)참관기(參觀記), 참가자가 많아서 모두 신이 났다.

김일중 2016. 12. 10. 17:28

광화문 보수집회(12월10일)참관기(參觀記), 참가자가 많아서 모두 신이 났다.

 

 2016년 12월 10일 김 일 중

 (조갑제 닷컴 회원 토론방에 쓴 글)

 

광화문 보수집회를 참관하였다. 참가 인원이 많아서 주최 측이 신이 났다. 참가자도 신이 났다. 주최(主催) 측이 “30만 명의 애국 시민이 참여 하고 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성공적인 집회였다.

 

10시 50분에 서울역에서 시청역으로 가기 위해 2호선으로 환승하려는데 평소와는 달리 노인들이 많아서 환승하기가 어려웠다. 집회(集會)에 가는 인파 때문이었다. 시청역 4번 출구로 나가는데, 인파가 많아서 보행하기가 어려웠다. 11시에 시위 본부가 있는 동아일보 옆에 도착했다. 수만은 시위군중이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시위 허가를 받은 지역이 동아일보에서 종로 4거리에서 을지로 입구로 가는 도로까지의 청계천인 것 같다.

 

동아일보에서 광교다리까지의 청계천 도로에 태극기를 든 군중이 많았다. 젊은이도 더러 보였다. 가족끼리 나온 이도 있었다. 노부부가 손잡고 나온 이도 있었다. 손자도 데리고 온 이도 있었다. 스님도 보이더라.

시위 본부(本部)에 대형 스크린 한 대와 성능 좋은 대형 스피커 2대가 있었다. 그 스피커에서 신나고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았다. 청중을 자극하는 노래로 흥을 돋우었다. 대통령의 탄핵으로 모든 시민이 시무룩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밝고 기쁜 율동 때문인지 군중은 의외로 침울하지 않고 밝은 얼굴들이었다. 물론 표정 없는 이도 있다.

 

11시부터 시위 행사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1시 20분에 보수연합 탄핵반대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12시 45분에 행사가 끝나고 바로 종로 거리로 행진(行進)이 시작되었다. 행진 때 애국가를 불렀다. 탄핵 무효(無效)라는 구호도 외쳤다. 나는 종로 4거리까지 도보행진을 하다 종로 1가에서 전철을 타고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종로 거리 말고도 청계천 거리를 따라 행진하는 인파(人波)도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이런 말들이 들렸다.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말을 하였다. 남자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울지 마세요, 울지마세요, 아파하지 마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힘을 내세요. 우리가 지켜드립니다.” 백대통령을 행해 하는 말이 분명하다.

 

플래카드와 사람들이 들고 있는 구호와 전단지는 이런 것들이었다. “탄핵(彈劾) 무효, 울지 마라 박근혜, 5천 만이 지켜준다. 인민재판 탄핵무효, 박근혜를 구하자. 선동탄핵 원천 무효, 계엄령 선포, 새누리당 해체(解體), 손석희 구속, 쓰레기 언론, 누명 탄핵 원천 무효, 대통령님 힘내세요” 등등이었다.

 

연사(演士)들은 탄핵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대통령을 기소한 검찰을 비난했다. 언론을 비난했다. 새누리당의 해체를 말하기도 했다. 좌파와 내통한 김무성과 유승민을 규탄(糾彈)했다. 새누리당의 일부 국회의원들의 탄핵찬성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연사들은 비난을 하되 비교적 신사적인 언어로 비난했다. 듣기가 으스스한 그런 주장은 자제하고 삼갔다.

 

탄핵재판이 열리면 좌파에서 매일 대법관을 위협하는 시위를 할 것인데 이러한 좌파에 맞서 우파(右派)도 슬기롭게 맞대응하자는 제안(提案)도 하였다. 재판관들이 좌파의 선동과 위협에 굴복(屈伏)하지 않으면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披瀝)하기도 했다.

 

거기 시위 현장에 나온 이들은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긴 해도 그렇게 심하고 격렬하게 좌파와 일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연사들도 시위 군중들도 사생결단(死生決斷) 식의 적의(敵意)를 나타내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비관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 시위 현장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한결 같은 불만은 광화문 좌파와 종복 시위대의 그 시위만이 민의(民意)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파의 민의를 전달하려고 해도 시민을 좌파처럼 그렇게 많이 모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종로 1가 전철역에서 전철을 탔다. 내가 일상(日常)으로 돌아온 것이다. 오늘의 시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듯 한 시민들이 분주히 오고 간다. 그들은 담담하다. 연인들인 것처럼 보이는 두 젊은 남녀가 보인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에 코를 대고 그녀의 머리 냄새를 맡으면서 행복해 한다. 우리 여기는 아직 평화스럽다. 좌우파의 시위는 있어도 평화(平和)가 이 땅에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