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이여, 의연(依然)하라. 태극기 세력과 함께 싸우자
2017년 3월 11일 김 일 중
(조갑제 닷컴 회원토론방에 쓴 글)
어떤 사람이 의지가 강하고 굳세어 끄떡없을 때 우리는 그를 의연(依然)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박 대통령이여 의연하라. 당신은 우리 태극기 세력의 최전방에 선 장수였다. 당신은 낙마(落馬)했으나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맹수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 당신이 의연함을 보여 앞으로 계속 싸울 태극기 세력의 기를 꺽지 말라.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라. 할 말은 하고 청와대를 떠나라 그리고 앞으로 정치의 현장을 떠나지 마라. 우리와 함께 싸우자.
내가 계속 말하는데, 갈대(판사)는 바람(여론)에 흔들린다. 세계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 재판은, 국내의 재판에서도, 특히 정치 재판에서는 갈대는 흔들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 태극기 세력이 혼신(渾身)의 힘을 쏟아 잘 싸워왔으나 우리는 그 세차게 불어댄 바람을, 갈대를 꺾어댄 바람을 막지 못했다. 국민의 열 사람 중 일곱 사람이 탄핵을 찬성했다. 바람이 너무 셌다. 태풍이었다.
최제우(崔濟愚) (1824~1864) 동학(東學) 교주(敎主)는 인내천(人乃天)이라고 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염원하고 염원하면 하늘도 어쩔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데 하늘인들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느냐? 우리 태극기 세력은 일단 하늘을 원망하자. 그리고 하늘이 앞으로 어떻게 일을 도모(圖謀)해 가는지 두고 보자. 우리에게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이 있다.
광화문 그 촛불 세력들은 단두대를 들고 시위 현장에 나나났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1754~1793)와 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는 단두대 앞에서도 침착하고 의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육신적으로는 죽은 것이 아니다. 우리 태극기 세력은 그의 육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상징적으로 단두대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박대통령이 앞으로 그 단두대로 그를 적대한 불의(不義)한 자들을 단죄(斷罪)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태극기 세력은 지금으로부터 324년 전 저기 유럽 프랑스로 가보자. 1793년 1월 21일 파리의 콩코드 광장으로 가보자. 그 날은 몹시 추었을 것이다. 구름 낀 음산한 날씨였을 것이다.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어떻게 의연하게 죽어갔는지를 보자. 그리고 우리가 사랑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날 때 루이 16세처럼 의연하게 떠나기를 염원하자.
1793년 1월 21일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설치된 단두대는 드디어 루이 16세를 첫 손님으로 맞이했다. 루이 16세가 그 타고 온 수레에서 내렸다. 형리들이 달려들어 그가 입은 코트를 벗기려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들을 조용히 제지했다. 스스로 코트를 벗었다. 이들이 루이의 손을 묶으려 했다. 그는 이를 거부했다.
"나의 손을 묶으려 하지 말라. 나는 결박 된 채 사형대에 오르지 않겠다.” 그는 침착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때 그 처형장에 배석했던 사제 앙리 드 페르몽이 루이 16세를 조용히 설득했다. “폐하, 이 순간, 폐하의 이 마지막 순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순간과 같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폐하의 모든 고통을 덜어 주시고 곧 낙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루이 16세는 자포자기(自暴自棄)한 듯 그의 손을 묶으려는 형리들에게 말했다. “그대들 마음대로 하라. 어떤 굴욕이라도 감당하겠다.” 손이 묶인 채 사형대의 계단을 오른 루이 16세는, 그 당시의 세계정세의 희생제물이 된 그는 주위를 잠간 둘러 봤다. 그리고 놀라울 만큼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그의 처형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군중들을 행해 짧은 연설을 했다.
“나는 내게 씌워진 모든 죄목에도 불구하고 결백한 채 죽습니다. 내 죽음을 승인한 사람들을 모두 용사하며 내가 흘릴 피 이후로 다시는 프랑스에 피가 흐리지 않기를 신(神)에게 기도하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형리들이 그의 몸을 붙잡아 단두대로 밀어 넣었다. 1793년 1월 21일 오전 10시 15분, 국왕의 머리가 단두대 앞에 놓인 바구니로 떨어졌다. “공화국 만세”를 외치는 군중의 환호가 이어졌다.
그해 10월 16일 이번에는 그의 아내이자 폐비인 마리 앙두아네트가 반역죄뿐 아니라 아들과의 근친상간 등 터무니없는 죄목까지 함께 달고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졌다. 그 여인도 역시 처형에 앞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왕족의 위엄을 갖춘 채 죽음을 맞았다. 왕과 왕비를 죽이면 지상천국이 도래할 것으로 알고 희희낙락하던 군중은 그 뒤 나폴레온이 나타날 때가지 10년 간 생지옥(生地獄)을 경험했다.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아, 박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것을 보고 너무 즐거워하고 기뻐하지 마라.
갈대는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에 흔들린 갈대를, 태풍에 모두 꺾긴 갈대를 미워하지 말자. 제법(諸法)이 인간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늘의 도모는 너무 오묘(奧妙)해서 측량할 수 없는 것 아니냐? 태극기를 흔든 사람들아, 전회위복이란 말이 우리를 위로해준다. 다행이도 박대통령의 육신은 살아있다. 앞으로 그의 누명(陋名)은 벗겨질 것이다.
나는 루이 16세가 그의 생애 막지 막에서 한 말을 다시 반복한다. “그대들 마음대로 하라. 어떤 굴욕(屈辱)이라고 감당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날 때 의연하기를 바란다. 그가 앞으로 겪을 온갖 굴욕(屈辱)을 잘 참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를 사랑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를 적대(敵對)한 국민도 미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루이 16세는 그를 죽인 사람들까지도 용서했다.
박대통령은 의연해야 한다. 굴욕을 참아야 한다. 민간인으로 돌아가서 정치 현장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대의(大義)를 위해 앞으로 할 일이 많다. 그는 여전히 우리 태극기 세력의 선봉(先鋒)에 선 장수다. 우리 그와 함께 끝까지 싸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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