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일 중
2008년 5월12일
기독교를 알고 싶지 않으세요? 예수님을 믿고 싶지는 않지만, 교양으로라도 한 번 기독교를 알고 싶지 않으세요? 저는 궁금해서 75만 명의 신도가 등록된 여의도 순복음교회도 가서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도 들어보았고, 이 명 박 대통령께서 다니시는 소망교회도 가서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도 들어보았고, 성당도 가보았습니다. 대한 불교조계종의 본사인 조계사도 가서 종정의 설법도 들어보았습니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회교 사원도 가보고, 증산교도의 일파인 대순진리회 본당도 가보았습니다. 곽선희 목사님은 육군사관학교에서 군목을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했을 때, 곽목사가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그의 기도에 감동해 대통령이 울었다는 책을 읽고, 곽 목사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그 분의 설교를 듣기 위해 소망교회를 바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박대통령이 잘 우는 분이었던가요? 아니지요. 저의 기억으로는 서독 방문 시에 돈 벌려고 먼 서독까지 갔던 우리 간호사들과 광부들을 붙들고 울었고, 육영수 여사가 비명에 돌아갔을 때 울었습니다.
교회가 무엇 하는 곳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오늘도 저와 같이 저의 동료 20여명이 역삼동 일대를 돌아 다니면서 전단지를 돌리면서 교회를 나오시라고 하는데, 짜증이 나는 분도 계시겠지만 교회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만일 귀하께서 기독교를 알고 싶으시고 교회를 알고 싶으시면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교회에 모시고 가겠습니다. 여자분이라면 저의 아내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교양의 차원에서라도 기독교와 그 사상을 알아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50대였던 어느 봄 날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대한민국의 쟁쟁한 큰 스님들이 한 2주일 넘게 연속해서 설법을 한다고 해서 그 곳에 갔습니다. 그 스님의 이름은 지금 잊었지만, 한스님이 “큰 스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당당한 체구에 풍채가 좋았고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으며, 목소리도 좋아서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습니다. 오랜 수행에서 오는 평화가 몸 전체에서 풍기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의 설법 내용은 자기 자랑이 심했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 큰 스님은 그의 설법에서 기독교를 비판했는데, “예수는 서른 세 살에 제명대로 죽지도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복 없어서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타살된 그런 복 없는 예수를 믿어서 무엇을 얻을려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성당에 가는지 모르겠다”고 껄껄대면서 신도들을 웃기었습니다. 그 큰 스님은 기독교에 대한 교양이 없던 분이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지요. 기독교에 대한 약간의 교양이 있었으면, 그 스님도 예수님을 그렇게 비양대는 설법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귀하도 기독교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제가 이렇게 저의 동료들과 함께 전단지를 돌리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거리에 다니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죄를 짓고 죽으면 지옥 간다고 하지요? 이 말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아니하는 일반 사람들도 대부분 수긍하는 말 아닙니까? 기독교의 입장은 모든 인간은 본성이 악해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 죄를 지었고, 앞으로도 지을 것이고, 그래서 죽으면 지옥을 간다 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합니다.기독교 교리는 인간이 죽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죄를 짓고 죽어, 지옥 가는 불쌍한 인간들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이 불쌍한 인간들을 구원하려고, 하느님은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2000년 전에 이 땅에 보내어서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지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죄 때문에 죽어야 할 인간들의 죄를 하느님의 아들이 대신 맡아 돌아 가신 것이지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아주 쉽게 설명한 이러한 기독교 교리를 대속의 은혜라고 합니다. 이런 교리를 그 조계종의 큰 스님이 믿던 안 믿던 한 번이라도 들어 보았더라면 예수님의 죽음을 조롱하지는 안 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글에서 기독교인들이 쓰는 단어인 "하나님" 대신에 하느님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글은 기독교를 모르는 분을 위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귀하가 악하고 죄인이라고 하면 기분이 나쁘고 펄쩍 뛰시겠지요. 알고 보니 기독교는 야만의 종교라고 분개하실지도 모릅니다. 나는 착한 사람인데, 별 해괴한 소리를 듣는다고 하면서, 나는 하느님에게 죄지은 일이 없다고 강변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음욕을 품기만 해도 죄를 짓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마음으로 죄 짓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말하는 죄는 많이 다릅니다.
교회를 다니다 보면 어는 날 나를 포함한 인간은 악하고, “독사의 새끼처럼 악하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는 것을 깨닫고 죄인이라는 말씀에 공감이 가는 때가 옵니다. 내가 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타인의 악함을 비난하지 않게 됩니다. 몰론 전혀 비난 안 할 수야 없지요. 하지만 비난이 점차 줄어 듭니다. “가장 나쁜 놈들이 정치하는 놈들” 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치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밉지 않게 보입니다. 제가 마치 남을 비난하지 않는 경지에 든 것 처럼 말씀 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그런 경지에는 못 갔습니다. 믿음이 좋은 분들은 남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남을 비난하시던가요? 이분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교회를 다녀서 남을 미워하지 않게 되고, 비난하지 않게 되기만 해도 얼마나 큰 소득입니까? 불교를 믿던 회교를 믿던 올바른 신앙인은 남을 비난하고 미워하지 않더라고요. 남을 미워할 때 괴롭지 않던가요? 귀하께서 혹시 주변에 미운 분이 있으시면 제가 교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어머니가, 아버지가, 자식들이 미우면 더욱 괴롭지요. 교회가 미움을 치유하는 병원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면 우리도 타인을 사랑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종교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냥꾼이 사냥을 나갈 때, 그는 총을 어깨에 메고 실탄을 허리에 차고 잘 훈련된 사냥개를 데리고 나갑니다. 총을 들고 이 산으로 달리고 저 산으로 달리는 사냥꾼을 따라 다니는 이 사냥개는 신이 나고 힘이 납니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신나게 사냥을 합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냥 개는 갑자기 호랑이를 만납니다. 이 때 개가 도망 갈 가요? 주인의 뒤에 숨어서 벌벌 떨 가요? 전문 사냥꾼에 따르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냥꾼이 가만이 서 있어도 개는 호랑이와 싸워서 호랑이를 이긴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될 가요?
이 사냥개는 총을 가지고 있는 주인인 사냥꾼의 능력을 믿고 있어서 그 자신이 호랑이와 싸워서 위험하게 되면 주인이 호랑이를 쏘아서 자신을 구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호랑이와 싸워서 결코 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사냥개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까? 그의 주인에 대한 믿음이 그를 용감하게 한 것이 아닙니까? 눈치 빠른 분들은 제가 사냥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종교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불쾌하게 생각하시지 마시고, 이 사냥개를 인간으로 생각해보세요. 사냥꾼을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옥황상제) 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제가 믿는 하나님 (예수님)을 총을 든, 산 생명을 죽이는 것을 하나의 스포츠로 생각하는 사냥꾼에 비유한 것은 큰 불경 죄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직 종교를 설명하기 위한 방편 일 뿐입니다. 믿는 자들은 일생 생활에서 그들의 하느님이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이 언제 어디서나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돕는다고 믿습니다. 총든 사냥꾼이 그의 개를 보호하듯이 말입니다.
우리들은 한강대교를 지날 때에 다리가 무너져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한강을 건너지는 않습니다. 한강대교는 안전하다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불안하지 않은 것이지요. 이 처럼 우리가 이 살기 어렵고 험한 세상을 살아 갈 때에 믿음은 꼭 필요합니다. 위에 말씀드린 호랑이를 나에게 닥친 죽을 병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갑자기 직장을 잃은 것으로 생각해보세요. 부모를 일은 것, 자식을 잃은 것으로 생각해보세요. 애인이 나를 버린 것으로 생각해보세요. 또 여러 가지 불행으로 생각해보세요. 믿지 않는 사람들, 종교가 없는 분들은 이 때 어디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겠습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 기도해서 힘을,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습니다. 물론 이런 도움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도움은 극히 적은 일부분입니다. 결코 핵심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면 하나님한테 도움을 받는다는 말씀은 틀린 말은 아니나, 이는 초신자 들을 위한 하나의 미끼 수준의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더 큰 것을 얻으려고 교회에 갑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교회에 갑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으실텐데, 이는 교회에 오시면 아시게 됩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 예수라는 사람이 가난한 목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목수 일을 하다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자기 자신을 하느님과 하나라고, 즉 하느님 바로 그 자체라고 선언한 젊은 이가 있었습니다. 이 젊은 이는 바로 그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하느님 그 자체 라는 주장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 의해 서른 세 살 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 사실은 꾸며서 쓴 이야기도 아니고 실제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 입니다. 저는 학교 교과서에서 예수님을 4대 성인의 하나로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이 예수는 자기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는 모르나, 부처님, 공자님,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이 절대자 (하느님) 라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거침 없이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느님이고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지요. 사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충격적인 주장이고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기 힘든 주장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하느님과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하나님을 가려서 쓰고 있습니다.
예수는 3년이라는 짧은 공생애 (公生涯) 가운데, 죽어 장사지 낸지 3일 되는 사람을, 썩어 냄새나는 시체를 살렸고, 장님을 눈 뜨게 했고, 중풍병 환자를 일으켜 세웠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고, 문둥병자를 치유했고, 물위를 걸었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보고 잠잠 하라고 일갈해서 고요하게 만들었고, 보리떡 세 개로 5,000명을 먹이는 등 일일이 열거 할 수 없는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그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나, 그가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한 대로 죽은 지 3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는 부활한 후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물다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이적과 부활을 꾸며 낸 이야기라 한다 해도,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이런 사건을 역사적인 사실로 믿지요), 그가 바로 하느님이란 주장은 그의 말대로 그가 정말 하느님이던지, 아니면 허튼 소리를 한 미치광이 청년이었을 것인데, 만일 그가 미치광이 청년이었다면, 영특한 인간들이 지난 2,000년 동안 그가 미치광이 사기꾼이란 것을 밝히지 못 했겠습니까? 사기는 늦어도 100년 안에 들통이 납니다. 거짓은 시기가 문제지 언젠가는 밝혀집니다. 제가 알기로는 예수가 위대한 사기꾼이었다고 밝힌 사람은 아직 없었습니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고도 했습니다. 미치광이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지요. 예수님이 하나님 이시니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 두 말씀만 생각해도 슬플 때 괴로울 때 위로를 받고, 원수도 아닌 사람을 내 자신의 작은 이익 때문에 미워할 때 내자신이 "독사새끼 보다도 악한 놈"이라고 느낍니다. 큰 망치가 쾅쾅 천지를 진동하면서 큰 못이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은 것을 생각하면 어떤 때는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조계사의 그 큰 스님한테 조롱 받을 죽음이 결코 아닙니다. 귀하는 남을 위해 귀하의 생명을 버릴 수 있습니까?없지요. 자식을 위해 죽는 어머니는 간혹 있습니다.
앞에서 처럼 다시 귀하께 여쭈어 봅니다. 예수님을 알고 싶으시지 않습니까? 기독교를 알고 싶으시지 않습니까? 제가 귀하를 교회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저의 아내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02) 584-1904가 저의 전화입니다. 저의 Blog 주소는 http://blog.daum.net/noonkim입니다.
저는 역삼 전철역 주위에 있는 충현교회의 서리집사입니다. 김 일중입니다. 연락 주십시오. 귀하를 모시고 교회를 갈수 있다면 제가 정말로 기쁘겠습니다. 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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