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럼

그래도 우리들은 잘 싸웠다. 그리고 싸우고 있다.

김일중 2016. 12. 26. 23:23

 

그래도 우리들은 잘 싸웠다. 그리고 싸우고 있다.

 

 2016년 12월 26일 김 일 중

(조갑제 닷컴 회원방에 쓴 글)

 

우리는, 이 땅의 보수 · 우파들은 그래도 잘 싸웠다. 관군(官軍)이 패한 가운데서도 의병(義兵)들이 매우 잘 싸웠다. 그리고 싸우고 있다. 승리의 나팔을 불 때가 온다. 일패도지(一敗塗地)할 적을 볼 날이 온다.

 

1429년 1월 어느 날, 저기 프랑스, 시농이란 곳에 잔 다르크(1412~1431)란 소녀가 샤를 왕 세자(世子)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하였다. 그의 나이 17세. 캐토릭 신자.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文盲). 그런데 그녀는 신이 그녀에게 준 메시지를 샤를 왕세자에게 전하겠다는 대담한 주장을 했다.

 

그 때 샤를 왕 세자는 내전(內戰) 중이었고 적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격 이었다. 그의 처지가 하도 어려워서 그녀를 만나는 데 동의한 왕세자는 시종에게 자기 옷을 입히고 자신은 신하들 틈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잔 다르크는 그 때까지 일면식(一面識)도 없던 왕세자를 바로 찾아냈다. 최태민도 박근혜 소녀를 이런 능력으로 홀렸을 지도 모른다.

 

잔 다르크는 샤를과의 독대(獨對)에서 그는 13세부터 하나님의 천사들의 음성을 듣고 환상(幻想)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천사들이 샤를 왕세자를 빨리 만나 도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해서 그 왕세자는 잔 다르크에 1,000 명의 군사를 주고 사비(私費)를 들여 제작한 갑옷과 말을 주어 그의 적과 싸우게 하였다. 그녀가 싸울 때마다 승리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17세의 문맹이었고, 싸워본 적이 없는 시골처녀가 어떻게 그렇게 용맹한 장군이 되어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싸우다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그녀는 신의 소리를 들었고, 천사들과 대화했다는 말을 한 것을 꼬투리 잡아 마녀라는 누명(陋名)으로 기소 되여 당대의 유명한 신학자 50명 (다시 반복한다. 50명)이 검사가 되어 그녀를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4개월을 들들 볶아댔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질문을 잘 받아냈다. 모든 몰가미가 되는 질문을 하나도 막힘이 없이 척척 받아 넘겼다.

 

잔 다르크를 죄인 만들기 위한 음험(陰險)한 시도는 참으로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어째든 50명의 검사는 잔 다르크를 죄인 만들기에 실패했다. 끝내 실패했다. 당시의 최고 권력자의 짜증 섞인 질책을 받은 검찰총장격인 신학자가 하는 수 없이 문맹인 잔 다르크를 속여 마녀라는 거짓 자백서에 서명하게 하여 그녀를 화형(火刑)으로 죽였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이 땅에는 지금 박대통령을 죄인으로 만들고, 김기춘을 죄인 만들고, 우병우를 죄인 만들기 위해 언론기관들이, 국회의원들이, 정치인들이, 광화문 시위꾼들이, 검사들이, 특검들이, 배신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가 되어 희희(嬉戱)낙락(樂樂)하면서 북과 장구를 치고 피리를 불면서 광란(狂亂)의 춤을 추고 있다.

 

검사나 특검들은 원래 그들의 임무가 죄인을 잡아 감옥에 보내는 것이니, 그들이 대통령, 김기춘, 우병우를 죄인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도 안 된다. 대통령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검사는 칭찬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바람(여론)에 날리는 갈대는 안 됐으면 좋겠다. 모택동(毛澤東) 치하(治下)의 홍위병 노릇은 안 했으면 좋겠다.

 

600년 전에 저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잔 다르크의 재판이 이 땅에서 일어날 이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세계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 기소와 재판은 불행하게도 그 당시의 바람(여론)에 흔들린 갈대였다. 세계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그것을 안다.

 

여기 이 땅에 세차게 불어 대는 바람 (광화문 촛불시위)에, 우리는, 이 땅의 보수 · 우파는 놀랍게도 잘 싸워왔고 또 잘 싸우고 있다. 이정현과 정진석으로 대표 되는 관군(官軍)은 쉬 무너지고 말았지만, 조갑제 장군과 그의 휘하(麾下)에 있는 의병(義兵)들은 아주 잘 싸우고 있다. 눈부신 전과를 올리고 있다.

 

정광용 박사모회장, 서경석 목사가 이끄는 의병들과 전국의 많은 의병들이 힘을 합쳐 잘 싸우고 있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이었던 애국 세력을 잘 살려 냈다. 잔 다르크가 잘 싸웠듯이 매우 잘 싸우고 있다. 저 미국에 있는 김평우 장군 (그는 변호사다) 은 탄핵 재판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곧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 헌법재판소에서 일어날 것임을 암시했다. 그래서 적들은 지금 불안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적군에 항복할까 봐 우리가 얼마나 조마조마 했냐? 적군의 칼에 찔려 낙마했으나, 그는 결코 항복(降伏)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치료 중이다. 이 쾌거를 이루어 낸 것이 의병들이 한 일이다. 대통령의 후임 장수로 나타난 황교안 장군은 얼마나 의젓하냐? 이것도 우리 의병의 업적이다. 그의 반듯하고 잘생긴 얼굴은 보기만 해도 기분 좋다.

 

그는 법치(法治)의 여의봉(如意棒)을 휘두를 수 있는 맹장 중의 맹장(猛將)이다. 한 마리 호랑이 앞에 잔재주 부리는 여우 새끼가 수만 마리가 무슨 소용이냐? 이 호랑이를 보고 우리 의병들은 힘과 용기를 얻었다. 관군으로서 맹활약하고 있는 김진태 장군도 용감하다. 김기춘 장군의 지혜와 총명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는 탁월한 지장(智將)이었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새로 혜성(彗星)처럼 나타난 우병우 장군을 보라. 그는 비록 과천 동물원의 쇠창살 안에 갇힌 호랑이었으나, 그 쇠창살 밖에서 던진 수많은 창과 칼을 잘 막아내었다. 여우 새끼들의 온갖 잔재주를 때로는 미소를 가지고, 때로는 멸시와 경멸의 눈으로, 때로는 분노로 맞서서 그들의 표구걸이 축제를 우습게 만들었다.

 

우장군은 너무 의연하고 당당해서 그를 심문한 국회의원들을 오히려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오히려 우장군이 여간내기가 아니라고 칭찬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으로 우파가 잘 키우면 좌파의 적장의 머리를 많이 벨 수 있을 것이다. 기대되는 장군이다.

 

구속된 최순실 씨. 대한민국의 검찰은 머리 좋은 이들로 구성된 뛰어난 두뇌 집단이다. 죄 없는 그녀를 구속할리가 없다. 검찰에 불려 갈 때 “죽을죄를 지었다” 고 해서 그녀는 우리를 실망시켰다. 그런데 이 여인이 검찰 조사에서 박대통령과 공모(共謀)관계를 부인하고, 김기춘과 유병우를 모른다고 했다. 그녀의 말이 맞을 것이다. 이런 그녀의 주장도 우리의 좌파와의 싸움을 위해서는 좋은 소식이다. 얼시구 절시구 좋다.

 

이번 광화문 촛불 시위로 시작된 좌 · 파의 싸움에서 우리와 잘 싸운 적은 민노총뿐이다. 그들은 비록 우리의 적이긴 해도 용감하게 잘 싸웠다. 새누리당 탄핵 지지 세력이 그들과 내통해서 성문만 안 열어 주었어도 박대통령의 낙마(落馬)는 없었다.

 

민노총의 복과 장구와 피리에 춤춘 자들인, 민주당, 국민당 국회의원들은 사실 이번 싸움에서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민노총의 가락에 맞춰 광란(狂亂)의 춤만 추었을 뿐이다. 그들은 허수아비 춤만 추었을 뿐이다. 우리의 적장들, 문제인, 안철수, 박원순, 그를 따라 다니는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은 사실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들은 매일 민노총의 눈치를 살피면서 춤만 추어댔다. 일개 노동단체에 끌려 다니면서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충실하게 했다. 그 중에는 대통령이 된 듯이 얼빠진 말을 하고 얼빠진 행동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몸은 만신창이의 부상을 입었다. 그의 몸에 밖인 화살만을 빼는데도 세월이 걸릴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이들은 우리 우파가, 우리 보수주의를 신봉하는 애국 세력이 잘 싸웠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최순실 여인이 검찰의 심문에 이제 당당히 맞서는 것을 보라. 이제 그 여인도 제 정신이 들었다. 광화문 촛불 집회에 혼이 빠졌던 일부 국민도 제 정신이 들었다.

 

우파는 여전히 기(氣)가 살아있다. 황교안 대통령권한 대행이 지금 웃고 있다. 600년 전의 잔 다르크의 기소(起訴)와 재판이 이 땅에서는 이루어 질 수 가 없다. 우리들은 문맹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래서 나는 우리 우파가 잘 싸웠고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