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모자를 잃게도 하시고 찾게도 하시는 하나님

김일중 2019. 6. 27. 20:01

모자를 잃게도 하시고 찾게도 하시는 하나님

2019년 6월 27일 김 일 중

 

나는 하나님이 내 생활에 개입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또 명령 하신다고 믿는다. (이때의 믿는 다는 뜻은 국어사전대로 “그렇게 여겨 의심하지 않는다” 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의 그러한 일들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지난 6월 24일 의료 선교사로 나가있는 사위와 그의 아들, 즉 외손자 (14세)와 함께, 소위 3대가 소요산을 등산했다. 나는 그날 등산 중 내 등산 모자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틀 뒤, 그 산에 다시 가서 그 모자를 찾았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攝理)를 믿는 개신교 신자다. 그러나 다시 찾은 모자와 관련하여 그 섭리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되고, 다음과 같은 물음이 일어났다. 내가 등산을 가게 한분은 하나님이신가? 내가 모자를 잃게 하셨다가 다시 찾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신가? 그렇다면 잃었던 모자를 다시 찾게 하신 그분의 뜻은 무엇일가? 하나님은 이 일들을 통해 나를 보고 무엇을 깨달으라고 하시는 것일가? 위의 ‘섭리’란 뜻의 일반적인 의미는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이란 의미인데, 내가 사용하는 의미는, 기독교의 교리인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 의지, 은혜로,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주체(主體)란 의미이다.

 

나는 이 글에서, 내가 왜 모자를 잃어 버렸고, 왜 그 모자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개개인의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시는 것 일가에 대한 나의 견해를 피력해 보려고 한다.

 

내 사위는 내과 전문의 이고, 딸은 정신과 전문의 이다. 사위 부부는 국내에서 의사생활을 하다가 영국에 가서, 해외 선교를 위해 선교전문 신학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국제적인 선교 단체에 소속되어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40대 중반. 아들은 14세, 딸은 6세. 사위 가족이 7년 넘게 의료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기독교 단체에서 해외선교에 대한 학술대회가 6월 초에 열렸는데, 그 대회에 딸이 초청되어 정신과 분야에 관한 의료 선교의 현실, 문제점, 나아갈 방향, 그리고 경험 등을 발표하기 위해 사위 일가가 일시 귀국했다. 국내 체류 중 사위의 제안으로 내가 소요산 등반에 참여했던 것이다.

 

외손자가 14세이고, 사위도 의사로서 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어 건강에 뛰어나 산을 잘 타리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의외로 산을 매우 잘 탔다. 외손자는 현지 미국인이 경영하는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데, 그 학교는 미국식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학교에서 공부 뿐 아니라 운동도 매우 중요 시 해서 운동도 많이 시킨다고 했다. 손자가 학교 테니스 대회에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손자가 제일 잘 산을 타고 사위도 산을 잘 타서 내가 그들을 뒤따를 수 가 없었다.

 

나는 70대 후반의 노인이라서 두 사람을 좇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나 때문에 마음대로 힘껏 산을 오르지 못하고 뒤처진 나를 여러 번 기다리는 일이 벌어져 그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는 뒤좇다 보니 산을 오르는 즐거움도 없고 힘만 들어서, 두 사람이 먼저 정상에 오르라고 말하고 나는 두 사람을 천천히 뒤좇아 정상을 오르면서 주변 경관을 음미하며 등산의 묘미를 즐겼다. 그래서 일행이 정상에서 만났다. 나는 1 시간 늦게 정상에 도착했다. 하산도 같은 방식으로 하기로 하고 다시 정상에서 서로 헤어져 먼저 두 사람이 하산하기로 했다. 나와 두 사람 모두 등산로 입구에서 재회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사위가 일러준 대로 의상대 (587m}에서 샘터 하산로(下山路)로 하산해야 했는데도 그 길로 가는 중에 길을 잘못 선택해서 샘터 가는 중간 지점에서 하산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내가 택한 길이 하산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희미해져서 사위가 말한 그 하산 길이 아닌 것을 알았다. 그러나 길을 잘못 선택한 곳으로 돌아가서 그 곳에서 다시 올바른 길을 찾기가 힘들 것 같아 그냥 그 잘못된 길로 계속 하산했다.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을 때는 믿는 사람은 기도를 안 할 수가 없다. 나도 기도 했다. 잘못된 길을 택했어도 희미한 하신길이라도 옳게 찾아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별안간 길이 끊기었다. 나의 앞에 돌만으로 된 넓은 내리막 부분이 나타났다. 길이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넓은 면적이 끝나는 저 먼 지점에 두 개의 돌무더기가 보였다. 사람들이 쌓아 놓은 선황 당에서 볼 수 있는 돌무더기였다. 저 돌무더기로 가면 길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가지고 간 물로 마시고 과자도 먹으면서 쉬었다. 이때에서야 비로소 내가 내 등산모를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온 길을 다시 돌아가면 반드시 잃어버린 모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었지만, 그러다 보면 사위 일행과 다시 만나는 시간이 많이 늦춰질 것이 분명하고, 내가 하산한 그 끝자락에서 사위를 만난다는 보장도 없을 것 같아 모자를 포기하기로 했다. 하산 길 중간 지접에서 사람을 만나 내가 하산하는 그길로 내려가면 사위와 만난다는 말을 듣고 열심히 하산했다. 드디어 사위를 만났다. 사위가 10분전에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가 잘못 길을 선택해서 하산 시간이 적어도 1 시간은 단축된 것이다. 사위는 적어도 내가 한 시간 뒤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사위의 말을 듣고 내가 길을 잘 못 선택한 일을 예사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위가 나를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하나님이 내가 잘못 길을 택하게 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4일이 등산 한 날이다. 그날 모자를 잃어버렸다. 25일 아침에 내가 기도할 때, 그 산에 다시 가면 그 모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자를 잃어버린 장소도 생각이 났다. 그 곳에 가면 그 모자가 분명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모자의 모습이 그곳 그 장소에서 보이는 듯 했다.

 

 

26일에 그 산에 다시 갔다. 내가 생각한 그 장소에 갔을 때, 내가 잃어버렸을 곳이라고 생각한 그 곳에 나의 모자는 그 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발 530M 지점이다. 그 곳은 지세가 너무 심해서 경사가 80도는 되는 곳이었다. 지팡이도 없이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급경사 길을 내려오면서 내 앞에 있는 나무를 손으로 잡았다. 그러나 그것이 나무가 아니고 칡넝쿨이라서, 몸 천체가 휘청하면서 크게 뒤틀렸는데, 하마터먼 경사진 것에서 사고를 당할 뻔했던 곳이다. 그 곳에서 내 모자가 날아간 것인데 그 모자를 잃어버린 것도 1 시간에나 지난 후에 알았다.

 

그 등산 모자의 값은 5,000원이다. 비싼 모자도 아니고 포기해도 크게 가슴 아플 사연도 없는 그런 평범한 모자다. 그러나 기도 중에 보이는 듯 했던 그 장소에 그 모자가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한 나의 기쁨과 하나님에 대한 나의 감사는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고, 잃어버렸고, 다시 찾을 수 있는 일은 그저 있을 수 있는 일, 우연한 일의 연속이었을까?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믿어진다.

 

내가 최근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고, 하나님이 우리 개개인의 생활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시는 가에 대해 아직 해답을 못 얻었는데, 그분이 나에게 이번 일을 통해 그 해답을 주시는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의 세세(細細)한 일상생활까지 간섭(干涉)하시고 개입(介入)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 모자를 찾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