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럼

나라를 욕설의 지옥으로 만드는 자들에게

김일중 2022. 6. 12. 23:43

나라를 욕설의 지옥으로 만드는 자들에게

(조갑제 닷컴의 Natizen 칼럼)

2022612

김일중

 

자신을 위해 보복 욕설은 안 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사람의 속마음 (잠재의식, 이를 무의식이라고도 한다)을 알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속마음이 있으면 겉마음 (현재의식)이 있다는 뜻이다. 교회에 다니는 한 노인이 노환으로 임종을 하는데 자꾸 미스 김을 부르면서 죽어갔다. 40대 여인은 곤한 잠에 빠지면 미스터 김을 부른다. 당연히 남편의 추궁을 받는다. 착한 갑돌은 술만 먹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아내를 팬다. 임종 시 미스 김을 부른 노인의 마음이 속마음 (잠재의식)이다. 잠자면서 미스터 김을 부르는 여인의 마음이 속마음 (잠재의식)이다. 술만 먹으면 아내를 구타하는 마음이 속마음 (잠재의식)이다.

 

조선일보에 조용기 목사와의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20년 전의 일일 것이다. 그 인터뷰에 따르면, 위 내시경을 하기 위해 의사가 그를 마취했다. 그는 마취 상태여서 겉마음 (현재의식)이 작용하지 않는데도 내시경 중에 늘 하던 평상시의 설교를 했다. 그의 속마음 (잠재의식)이 조 목사를 평상시의 설교를 하게 한 것이다. 그 목회자의 마취 중의 설교는 임종 시에 미스 김을 부른 것과 꿈속에서 미스터 김을 애타게 부른 여인의 경우와 다를 것이 없다.

 

이런 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이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인 지그믄트 프로히트 (Sigmund Freud, 1846-1939)이다. 그는 사람들의 실수가 오히려 실수하는 그 사람의 속마음을 잘 드러낸다고 주장 하면서 이런 예를 들었다. 회의를 주재하는 이가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를 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회의를 마치겠다고 하는 경우는 회의를 하고 싶지 않은 주재자의 잠재의식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남성이 어느 특정한 여성 옆에만 가면 쓰러져서 그 여성과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실수를 한다. 이것은 그 남자의 그 여인과의 접촉을 열망하는 잠재의식의 발로라고 프로히트는 해석했다. 한 의사가 친척 되는 환자를 치료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환자는 의사가 친척이라고 해서 치료비를 안 준다. 의사는 그가 그의 집을 향해 멀리 갔는데 가다 보니 환자가 살던 곳으로 다시 간다. 이런 현상을 치료비를 못 받은 그의 잠재의식이 치료비를 받으러 가는 행위로 해석했다.

 

불타(佛陀)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도(佛徒)들은 인간의 마음이 8 가지로 구성됐다는 것을 안다. ()()()()()() 6가지와 7() (무명식(無明識)) 8(야뢰아식)이 그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한자로 식()이라고 표시한다. 프로히트 학파는 여기서 6식까지를 현재의식이라고 부르고 7식과 8식을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와 같이 2,500년 전에 불타는 마음을 8가지로 분석했다. 그런데 프로히트는 19세기에 들어와서 마음을 두 가지로 분석했다. 현재의식과 잠재의식 (무의식(無意識))이 그것이다. 프로히트가 불타를 안 뒤에 마음을 두 가지로 구별했는지 모른다.

 

잠재의식을 프로히트 제자들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잠재의식은 인간이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깊은 잠에 빠지면 미스터 김을 부르는, 위에 언급한 여인이 남편의 추궁을 받은 뒤에, 자면서 미스터 김을 안부를 수가 없다. 술만 먹으면 아내를 구타하는 갑돌은 그 짓을 끊고 싶어도 안 된다. 인간의 큰 비극은 여기에 있다. 잠재의식은 인간의 현재의식으로 제어가 안 된다.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잠재의식이 인간을 마음대로 부려먹으면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가져온다. 그래서 불도들은 참선 수행과 기도룰 통해서 잠재의식을 제어해보려고 애쓴다.

 

잠재의식이 인간에게 행사하는 또 하나의 행패는 그 잠재의식이 인간의 6식이 행하는 모든 일이 선한 것인지 악한 일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무의식이 멍청한지 나는 모른다. 이것은 프로히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답할 문제이다.

 

저 평산 마을에서 문재인 옹에게 나가 죽으라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 있다면 그 욕설을 하는 그 사람의 잠재의식은 그 욕설을 하는 사람을 나가 죽도록 끌고 간다. 욕설을 들어도 싼 사람에게 한 욕설은 되돌아와서는 안 되는데, 그런 욕설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나는 모른다. 자기 자식에게 늘 낮이나 밤이나 빌러먹을 놈이라고 욕해대는 어머니는, 그 지식은 빌어먹고 그 자신도 빌어먹는다. 잠재의식은 선악의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그 욕설의 내용대로 반응한다.

 

그 누군가가, “, 그 놈 돈 좀 벌었다고 으스대더니만 폭삭 망했다네, 참 고소하다고 조롱하면, 그 말을 하는 그 사람의 잠재의식은 망하는 것이 좋은 줄 알고 그 욕설하는 자의 잠재의식이 그 사람을 망하는 길로 끌고 간다. 이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프로히트의 주장이다.

 

그래서 불타는 상대방이 받지 않는 욕설은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욕설을 금했고, 예수는 욕설하는 자에 대한 맞대응의 욕설도 금했다. 그는 욕설하는 자에 대한 징계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욕설을 들은 선량한 사람은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좋다. 그러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다. 욕설을 들어 마땅한 문재인의 남을 통한 고발은 하나님의 진노가 클 것이다..

 

욕설은 남을 저주하는 말이고, 남을 모욕하는 말이고, 남을 욕되게 하는 말이다. 욕설을 기쁘게, 즐겁게 하는 인간들이 많다. 돈을 벌기 위해 욕설을 하는 자들도 있다. 욕설을 대신하는 자도 나타났다. 본인이 직접 피해를 당하지도 않았는데 욕설을 대신해주는 인간도 생겼다. 스스로 욕설 대행업을 개업하고 조롱한다. 현직 대통령 집 앞에서 보복 욕설을 하겠다고 널리 알리고 박수치라고 한다. 그런데 그 욕설이 결국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온다면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다.

 

사리와 도리에도 맞지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자신은 피해를 보지도 안했는데, 보복 욕설이란 말을 만들고 이 나라를 욕설의 지옥으로 만드는 자에게는 자신에게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치고도 그 불행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수 있다. 입에 담고 싶지 않지만 그의 팔다리가 언제 부러질지 모른다. 다시 말한다. 나는 프로히트의 잠재의식이란 이론을 들어 그런 더럽고 추한 대행 욕설은, 보복 욕설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욕설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울면서 해야 옳다. 안하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