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목사와 그의 교회 헤븐교회가 이단이다”. 이 평가는 너무 가혹한 주홍글씨가 아닐까?
2015년 11월29일
김일중
나는 2015년 11월 27일에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신 제 100회 총회가 “정원목사와 그의 헤븐교회를 이단”으로 판정했다는 댓글을 받았다. 나는 기독교 평신도로서 합신교단의 판단을 존중하고 댓글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정원 목사를 이단(異端)으로 모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쓴다.
왜 기독교는 성경에서 한 발만 밖으로 나가도 이단인가? 왜 불교는 그렇게 많은 84,000권의 불경이 있는데도 서로 이단이라고 비난하지 않은데, 66권으로 구성된 성경을 가진 기독교는 그렇게도 심하게 서로 이단이라고 비난하고 정죄할까?
나는 정원 목사의 저서‘ 대적기도’를 포함해서 12권을 읽었다. 한 사람이 쓴 책을 12권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그 만큼 그의 책들은 나를 매료시켰고 감동시켰다. 그래서 그의 카페에 가입도 했다. 그의 교회를 방문해서 그의 설교도 들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바로 카페를 탈퇴했다. 방문도 안 했다. 내가 그의 카페에 글을 썼더니 바로 지워버리고, 질문을 해도 답변도 안 주고, 그 목사를 둘러싼 이들이 너무 그를 야단스럽게 존경하는 것 같아서 곧 카페를 탈퇴했다. 나는 그 목사와 그의 교회를 잊었다. 그러나 그가 가르쳐 준 대적기도는 지금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용할 것이다.
나는 합신교단의 이단 판정을 존중한다. 일개의 한 기독교 평신도인 내가 존중한다는 말을 사용하니 내가 뭐 대단한 교단의 권위를 가진 사람 같아서 미안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기독교인도 어떤 목사를 이단으로 낙인찍으면 그에 대한 의견은 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원 목사는, 그의 책에 나타난 것을 보면, 대단히 순수한 사람이다. 그는 그의 책을 많이 팔려고 광고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의 책이 그냥 많이 팔렸다. 돈을 탐하는 사람도 아니다. 돈을 벌려고 애쓰는 사람도 아니다. 명예를 탐하는 사람도 아니다. 큰 교회를 운영하며 호화로운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다. 그의 교회도 허름할 것이다. 문제는 그의 책이 많이 팔리니까 교단에서 현미경과 확대경을 대고 그를 검사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정 목사로부터 피해를 본 여성이 있다는 소식을 못 들었다. 그 목사한테 금전적인 사기를 당했다는 소식도 못 들었다.
목사가 귀신, 악한 영, 악령, 축사(逐邪) 기도란 말만 꺼내면 이상한 목사로 취급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목사는 누구나 이단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이 아닐까? 혹시 대적 기도란 말만 써도 무당 같은 목사라고 매도하는 것은 아닐까? 정원 목사의 대적 기도를 사용한 성도들의 수많은 간증이 그의 책에는 쓰여 있다. 나도 그의 대적기도를 사용해 효과를 본 사람이고, 그 기도를 앞으로 할 것이다.
나는 온누리 교회를 세운, 이제는 하늘나라에 있는 하용조 목사의 사도행전 전체에 관한 설교를 인터넷에서 들었다. 모두 68강좌이다. 그 설교 들를 다 녹음했다. 그 녹음을 녹취해서 노트를 만들었다. 그의 설교가 감동적이고 은혜로웠기 때문이다. 그의 다른 저서도 여러권 읽었다. 그 목사도 귀신 이야기를 한다. 사탄 마귀 이야기를 한다. 귀신 쫒는 이야기를 한다.
하목사는 그의 요한복음 강의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하용조 목사) 개인적으로 십자가의 보혈과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 귀신, 마귀, 사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어둠의 세력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마귀와 사탄에 대해 더 자세히 깨달을 수 있었다. 성령 충만을 입고 어둠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안에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치는 것을 목격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의 저서 요한복음 강의 37쪽에서 인용).
교회 다니는 분들은 20세기 최고의 설교가란 평판을 듣는 영국의 스펄전(Spurgeon)목사를 다 안다. 그도 마귀와 싸우려면 ‘대적하는 기도를 하라’고 한다.(스펄전의 설교학교(Encounter with Spurgen)란 책이름으로 번역된 책 441족). 오늘의 개신교가 있게 한 루터도 사탄 마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성경말씀에 승복하지 않는 악마를 퇴치하려면, 비웃고 업신여기는 것이 상책이다. 악마는 경멸을 참지 못하게 때문이다. 오만한 영, 악마, 귀신은 놀림감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라고 말한 사람은 토마스 모아이다. (C. S. 루이스의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1쪽 앞 쪽).
경희대학교 서정범 교수가 쓴 ‘한국 무속인 열전’ 여섯 권을 다 읽어보면 한국의 무당은 다 귀신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귀신을 못 보면 무당 노릇을 못한다. 서 교수는 40년 동안 3,500명의 이름난 이 땅의 무당들을 만나보고 그 책을 썼다. 그는 무신론자인데, 무당 연구가이기 전에 국어학자이다.
지난 11월 27일자 조선 닷컴에 조선일보의 월간 잡지 ‘산’의 신준범 기자가 “산 꾼들이 털어 놓은 산속에서 만난 귀신들의 이야기”란 제목으로 쓴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그 기사는 긴 글인데, 등산 갔다가 만난 귀신들에 대한 등산객들의 이야기와 그 자신이 산에 갔다 목격하고 경험한 귀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준범기자가 귀신을 목격했다는 바로 그 지역을 내가 지난 10월 24일 혼자 등산 갔다가 길을 잃었다. 그 때 나도 여자 귀신 둘의 목소리를, 두런대를 소리를, 깔깔 거리고 웃는 소리를 들었다.
경기도 가평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개이빨산(1,099m)에 오르고, 그 곳에서 민둥산(1,008.5m)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강씨봉(830m)으로, 도성고개(631m)를 거쳐 오뚜기령(761.8m)으로 갔다가 네 갈래 길인 오뚜기령에서 귀목봉(1,035.2m)을 올라서 하산하려고 했다. 그런데 귀목봉에 가다가 날이 저물었다. 초행길인데 아무도 없는 산길에서 길을 잃었다. 이미 어둑어둑 해졌다. 휴대한 손전등도 방전이 되어 캄캄한 산에 혼자 남게 되었다.
신기자(記者)에 따르면, (귀목봉에 귀신을 의미하는 귀자가 들어있다) 이 귀목봉 근방에 6.25 전쟁 중에 죽은 원혼(冤魂)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한 후 가던 길을 멈추고 오뚜기령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 영에서 경기도 포천 쪽으로 하산했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보니 내가 기도한 후 택한 길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이었다. 그 날 하늘에 반쪽 달이 있어 그 달빛에 의지하여 30리 길을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혼자 무사히 하산했다. 이 하산 길에서 정원 목사의 축사 기도도 했다. 나는 전에 두 번이나 귀신을 본적이 있다. 가까이서 보았다. 나는 귀신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귀신이 인간보다 불행한 존재다. 육체를 가진 우리보다 약한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귀신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평범한 사람도 귀신을 볼 수 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신기자의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나도 평범한 사람 중의 하나다. 정원 목사가 귀신과 축사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를 이단으로 몰리고 있는 것 같다. 목사가 귀신을, 사탄을 볼 수 있어서 그들을 쫒아낼 수 있으면 좋은 일 아닐까? 기독교인들 중에도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무당 같은 짓을 해서 존경받는 이가 있다. 나의 가까운 친척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 말을 믿었다가 큰 금전적인 손해를 본 이가 있다. 불교 경전에도 인간에게 아수라(귀신의 일종)가 붙으면, 훌륭한 무당 노릇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는 예가 기록되어 있다. 성직자가 영을 볼 수 없어도 좋지만 영을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아닌가?
나는 이 글의 처음에 왜 불교는 그렇게 많은 84,000권의 불경이 있는데도 서로 이단이라고 비난을 안 하느냐고 물었다. 불교도 수많은 종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이단이라고 싸우지 않는다. 나는 불교의 경전을 여러 수백권 읽어 보았다. 그런데 서로 반대되는 교리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그런데도 서로 이단이라고 싸우지 않는다. 불교는 기독교 자체도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불교를 공부해보려고 1997년 5월 13일부터 6월 30일까지 동국대학 불교대학 권기종 교수의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라디오 강의를 하루도 빠짐없이 녹음하고 녹취해서 노트로 만들어 공부했다. 내가 김용옥 교수의 요한복음 TV 강의와 하용조 목사의 인터넷 사도행전 설교를 모두 녹음해서 녹취한 것과 같이 권기종 교수의 강의도 그렇게 녹취해서 공부했다.
내가 권기종 교수의 강의를 잘 못 이해해서 잘 못 전달할가 적정이다. 내가 권 교수에게서 배운 나의 지식에 따르면, 불교는 기독교의 66권 성경에 비해 그 종교는 무려 84,000권의 경전이 있다. 그 경전을 읽어보면 내용이 서로 반대되는 경전들이 수두룩하다. 왜냐고? 불교에 따르면 그 이유가 이렇다. 쉽게 설명하면, 예를 들자면, 서가모니는 진리의 길은 동쪽이라고 설(說)했는데, 그의 진리를 들은 그의 제자와 신도들이 그 말을 서쪽이라고 이해한 사람도 있고, 북쪽이라고 이해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심지어 남쪽이라고 이해한 사람도 있고 그들은 사람의 이해력에 따라, 불교 용어로 말해 그의 제자들과 신도들의 근기(根機, 사람이 가진 종교적인 소질이나 능력)에 따라 다르게 이해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그런 일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하면 그 말을 해석하는 여당과 야당이 다르다. 듣는 사람마다 그 이해가 다르다. 불타(佛陀)는 일음(一音, 한 가지 소리)으로 설(設)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제 각각 다르게 이해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참선수행, 염불수행등 수행방법의 차이에 따른 수많은 이론이 나타나기 때문에 서로 상충되고 반대되는 이론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불경도 유치원생이 이해하도록 만든 경이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생을 위한 경전이 각각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학을 일등으로 들어간 지능을 자진 사람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전이 화엄경이란 것이다. 나도 그 경전의 해설서를 읽어 보았다. 그 경전 해설서조차도 어려웠다.
불교는 나라마다 다르다. 인도불교, 중국 불교, 한국 불고, 일본 월남 불교가 서로 다르다. 그런데도 서로 사탄이라고 이단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불교는 쉽게 설명해서 집이나 아파트로 비유해서 말하면 단층짜리 집인 불교가 있는가 하면, 2층짜리, 5층짜리, 20층짜리, 30층짜리가 있어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도 서로 비난하지 않는다. 불교인들은 기독교조차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가모니보다는 조금 못한 분이 예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원 목사와 그의 헤븐교회가 이단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른다. 그 목사의 여러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은혜를 받은, 그래서 그분의 대적기도를 나의 기도에서 사용하는 나로서는 그 목사가 이단이라는 평가가 너무 기혹한 것 같아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글을 썼다.
신구약 66권 성경에 기록된 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이단이요, 사탄이라고 매도하는 일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불교의 포용력을 기독교에서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안 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덧 붙임. 이 글을 쓴 뒤, 2년쯤 됐을 때 정원 목사는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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