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지지도(支持度) 하락을 기뻐하는 자들아, 겸손 하라
2016년 11월 16일 김일중 씀
(조갑제 닷컴의 회원토론방에 쓴 글)
절에 가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을 듣고 배운다. 불도(佛徒)들은 이 말의 뜻을 다 안다. 제행은 국어사전에 그 뜻이 ‘우주의 만물(萬物)’ 이라고 되어 있다. 무상은 ‘1. 모든 것이 아무 보람도 없이 헛되고 덧없음 2.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늘 변함 3.[불교]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이라고 되어 있다. 제행무상이란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뜻이다. 불타(佛陀)의 큰 가르침이다. 대들보 같은 교리(敎理) 중의 하나다.
인류의 큰 소승인 불타의 가르침을 이은상은 이렇게 시(詩)로 표현했다. 제목은 ‘옛 동산. 나 놀던 옛 동산에 오늘에 다시 서니 산천(山川) 의구(依舊)란 말 옛 시인의 허사(虛辭)로고. 예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도다. 도루 집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 해 풍우(風雨)엔지 산사태 무너져 무너지고 그 흙속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 구료.’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된 이은상 시인이 그가 놀던 동산에 올라 변한 세상을 보고 쓴 시이다. 이(李) 시인을 무상 시인이라고 칭한다. 이 시를 홍난파가 작곡한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을 안 송 창식 가수는 모든 것은 변해도 부부 간의 사랑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염원(念願)을 담아서 이렇게 작사(作詞)하고 곡(曲)을 붙였다. 제목은 ‘축가(祝歌). 처음 만난 그 순간이 좋았지. 처음 느낀 그 손길이 좋았지. 처음 닿은 그 손길이 좋았지. 처음 받은 그 마음이 좋았지. 언제나 만나서는 즐거웠지. 언제나 둘이 서만 속삭였지. 언제나 둘이 서만 걸었지. 하루하루 사랑을 키워왔었지.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둘이 둘 만이 이 세상을 끝날 까지 함께 살리라.’ 머리가 검을 때의 연애 감정을 잘 그렸다. 백년해로(百年偕老)의 염원이 잘 나타난 뛰어난 가사다.
우리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잖아요? 이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 진리입니까? 불타가 가르친 것이 별것도 아니네요’ 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알아도 근심하고 걱정하는 일이 줄어든다. 제행무상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 하고 체험으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불타처럼 체험으로 경험으로 알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도통(道通)을 하는 것이다.
불이 탄 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그러나 자기 재산을 불로 모두 잃고 자기 가족을 모두 잃어 본 사람은 불이 탄다는 것을, 불의 무서움을 우리보다 더 잘 안다. 한 재벌의 총수가 대통령까지 넘보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얻어먹는 거지가 되었다면, 우리가 아는 제행무상의 뜻보다 훨씬 더 뼈가 저리게 그 뜻을 잘 알 것이다.
박대통령을 말할 때 마다,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 이니 뭐니 하면서 그분을 칭찬 하던 자들이 입에 쌍 도끼 달고 지금 온갖 험담을 하는 것을 보라. 애초에 그들이 말하던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이란 없었다. 그들이 왜곡해 사용한 언어였다. ‘성난 민심, 분노한 민심’ 도 그렇다. 학문에서 기하학, 대수학 등 일체의 수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 즉 철학, 정치학, 종교, 과학 등은 80-90%가 거짓말일 지 모른다. 그것은 설(說)일 뿐이다. 명백하게 증명된 것은 없다.
제행무상(諸行無常)! 그렇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이 제행무상이란 진리 말고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정치인의 지지도도 변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췌사(贅辭) 중의 췌사 이다. 여론 조사 때문에 망한 정치인이 어디 한 둘이냐? 박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아, 실망하지 말자, 낙심하지 말자. 올라간다. 더 내려 갈 곳이 없다. 지지도의 하락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자들아, 조롱하는 자들아, 멸시하는 자들아, 겸손 하라. 그것이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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